한 연구기관이 '집값이 20%는 떨어져야 소비가 살아난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김광수경제연구소는 최근 '부동산 투기버블과 경제적 영향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가계는 주택담보대출금의 이자를 갚느라 돈이 생겨도 쓸 수가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집값이 적정수준으로 떨어져 주택 매매가 활발해지면 재산 손실은 있을지언정 가계의 유동성은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과도한 이자부담을 계속 짊어지고 간다면, 앞으로 4∼6년간은 소비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연구소에 따르면 부동산 투기 버블로 인한 가계의 이자수지 적자는 지난해 6조5,000억원 수준. 부동산 투기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2000년에만 해도 가계는 대출금 지급이자보다 예금 이자수입이 6조3,000억원 더 많았다.
부동산 투기버블로 매년 13조원(6조5,000억원+6조3,000억원) 가량의 이자 손실이 생기는 셈이다. 이 때문에 가계 소비의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게 이 연구소의 진단이다.
연구소는 현재 집값의 30∼41%는 버블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2년간 서울과 전국 도시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각각 59.8%, 49.5%지만, 부동산 투자 적정수익률은 7.1∼9.5%(2년간 14.2∼19.0%)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버블이 빠지려면 4∼6년은 걸리는 만큼 현재 집값이 적정수준이 될 때까지 소비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소는 충격이 있어도 버블을 한번 털고 가야 장기불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구소는 지난해 3분기가 피크였기 때문에 올 연말까지 집값이 20% 하락하면 적정가격에 도달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집값 하락을 유도, 매매가 활발해지면 집을 샀던 사람들은 20% 가량의 자산 손실의 고통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과거 이자부담은 보상 받는 셈이고, 부채의 늪에서도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도 "통념과 반대로 소비부진의 원인이 집값 상승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정부가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기대심리를 없애줘야 가계가 자산손실을 반영하게 되고, 유동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집값이 떨어지면, 무주택자들의 씀씀이도 늘어날 수 있다. 과거에는 15년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었지만 버블이 꺼지면 10년만 모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 주장이 자산가치가 하락하면 씀씀이를 줄이는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재산이 줄어든 마당에 설령 손실을 털고(집을 팔고) 유동성을 회복했다 하더라도, 소비로 바로 이어질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억원 대출 받아 3억원 짜리 집을 산 사람이, 2억4,000만원에 팔면 손에 쥐는 돈은 1억4,000만원. 이 돈으로 다시 집을 사거나 전세를 간 들 소비가 회복될 리 없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집값이 하락하면 가계의 대출금 원금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이 경우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더 높다"며 "집값은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그나마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금리를 올려 버블을 서서히 빼면서, 소득증가로 부채상환 능력을 높이는 장기전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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