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둔황(敦煌)석굴 벽화에 미쳐 7년간 고비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살았던 화가 서용(42)씨. 바람에 모래알이 쓸려갈 때 산이 우는 소리가 난다는 밍사산(鳴沙山) 기슭에서 바람소리를 벗삼아 벽화작업에 빠졌던 그가 최근 귀국, 국내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31일까지 서울옥션센터에서 개최되는‘영원한 사막의 꽃_돈황’전.서울대 동양화과를 나온 서씨는 대학 때 지도교수였던 이종상 전 서울대 박물관장의 영향으로 벽화를 전공하게 됐다. 그리고“이왕이면 동양의 벽화를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에 한ㆍ중수교 원년인 1992년 베이징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둔황벽화에 빠져든 건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을 결심하던 1997년.
“당시 베이징에서 두차례나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도 가슴 한구석이 휑하더군요. 내 그림에도 유행을 쫓는 기운이 비쳤던 거죠.”
94년 처음 만난 둔황석굴을 3년 만에 다시 찾았다.“94년에 둔황벽화는 내 머리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갔더니 뭔가 확 때리는 게 있더군요. 그 길로 둔황 막고굴에 주저앉았습니다.”
4세기 중반부터 1,000년에 걸쳐 만들어진 492개 둔황석굴의 벽화에 매달렸다. 외국인으로서 둔황벽화에 접근하는데 걸림돌이 많아서 아예 란저우(蘭州)대 둔황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현대미술에 비길 수 없는 둔황벽화의 우수성을 보고 그것을 충실히 모사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이제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에 이르렀다.
둔황벽화의 제작방식을 그대로 옮겨, 둔황의 황토와 흙판을 만들어 그 위에 돌가루 안료에 채색하고 때로는 사포로 긁어내 1,500년 세월의 풍상을 표현했다.
중국 당국이 특별관리하는 57호굴 관음상과 천불, 그리고 석굴 천장문양으로 구성한 2.45mX10m 대작‘수하설법천불도(樹下說法千佛圖)’등 이번 전시에 나온 37점은 서씨가 둔황벽화 속 부처와 석굴 천장과 벽의 문양 그리고 척박한 사막의 땅 이미지를 재조합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서씨는“벽화는 그림으로 풀어내는 역사”라며“둔황은 서역으로부터 불교가 한중일 동북아 3국에 처음으로 전달된 곳으로, 둔황벽화는 경주 석굴암에서 완벽하게 예술적으로 승화한 우리 불교미술의 뿌리”라고 말했다. 중국인들도 가기를 꺼리는 오지, 둔황에 그는 왜 빠져들었을까.“둔황은 길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거칠고 척박한 황야죠. 여성적 기운이 아니라, 남성적 기운이 느껴지는 땅입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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