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이 걸렸다. 언덕 너머에서 아침 햇살과 함께 그의 얼굴이 드러난다.8일 오전6시12분(현지시각ㆍ한국시각 12시12분) ‘클래식 마라톤 코스’ 33㎞ 지점에서 이봉주(34ㆍ삼성전자)는 달기기를 멈췄다. 해발 250m 오르막 죽음의 구간(15~32㎞)을 막 넘어선 곳이다. “새벽이라 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힘들어요.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지구력은 자신 있으니까.”
그는 오전3시에 일어나 숙소인 시바에서 차를 달려 아테네로 왔다. “지난해 두 번 답사는 했지만 직접 뛰어보니까 코스 특성을 알게 되고 감각도 익힌 것 같아요.” 1시간2분 동안의 실전훈련에 만족한 표정이다.
이날 이봉주의 평균 랩타임(5㎞ 기록)은 17~18분대, 실전에서 14분30초~15분대에 주파하니까 전력의 80% 정도만 활용한 셈이다. 그는 “뛰는 조건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결국 날씨 변화에 적응여부가 승부의 관건”이라고 했다.
오인환 감독은 “오후엔 더운데다 교통량이 많고 미리 코스를 뛰는 건 엄밀히 말해 불법이라 새벽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봉주의 적수로 거론되는 폴 터갓(케냐)과 스페인 일본 선수들도 이미 ‘비밀 레이스’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라톤이 시작되는 시각이 오후6시이지만 여전히 아스팔트는 뜨겁다. 오 감독은 “지열 때문에 체감 온도는 섭씨 29~32도, 습도는 39~40%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적의 마라톤 환경은 섭씨 8~10도, 습도 30~40%다.
오 감독은 “난코스지만 승부처는 눈에 보인다”고 했다. 이봉주는 22일까지 실제 경기시간에 맞춰 레이스 운영능력과 내리막길에 대비한 스피드 향상 훈련을 하게 된다. 오르막이 끝나는 32㎞ 지점까지 선두권을 유지하다 내리막길에서 앞으로 나가겠다는 계산이다.
23일부턴 탄수화물을 체내에 차곡차곡 쌓는 식이요법에 들어간다. 일곱 끼니까지 지방질을 먹어 몸 속의 탄수화물을 고갈시킨 다음 밥 국수 빵 등으로 새로운 탄수화물을 채워넣는다. 그리고 27일 아테네에 입성, 결전의 시간(29일)을 기다린다.
아테네=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무더위·오르막 등 '첩첩산중'
변수가 많은 만큼 적수를 가늠하기 힘들다.
섭씨 35도 안팎의 무더위, 높은 습도 그리고 해발 250m까지 쉴새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마라톤 ‘클래식 코스’는 일등과 꼴찌가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준비해 놓고 있다.
생애 3번째 올림픽 무대에 서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4ㆍ2시간7분20초)가 마지막 월계관을 쓰기 위해선 마라톤 스타일이 다른 흑풍(黑風)과 백풍(白風)을 뚫고 달려야 한다.
우선 지구력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운 흑풍 그룹. 2001보스턴마라톤 우승자 이봉주를 최대 라이벌로 지목한 세계기록(2시간4분55초) 보유자 폴 터갓(케냐)과 새미 코리어(케냐ㆍ2시간4분56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전노장 거트 타이스(2시간6분33초),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자 가리브 아오우드(모로코ㆍ2시간7분2초) 등이 난적이다.
흑풍 그룹은 이봉주보다 개인기록이 앞설뿐 아니라 한번 불이 붙으면 ‘인간이 아니다’는 탄성이 나올 만큼 막판 스퍼트가 강하다.
기록은 뒤지지만 체력을 바탕으로 난코스와 무더위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백풍 그룹도 무시할 수 없다. ‘스페인 트리오’ 호세 리오스(2시간7분42초) 훌리오 레이(2시간7분27초) 안토니오 페냐(2시간7분34초),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발디니(2시간7분29초) 등이 도사리고 있다.
기록보단 순위 전망이 치열할 이번 마라톤에서 15~32㎞ 구간의 오르막길을 무사히 넘고 내리막길에서 막판 스피드를 발휘해 2시간12분대에 결승선을 끊는 자가 최종 승자가 될 전망이다. 최근 AP통신은 금ㆍ은ㆍ동메달을 코리어, 리오스, 터갓 순으로 예상했다.
/아테네=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