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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노무현 정부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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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노무현 정부의 여름

입력
2004.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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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어제 오늘뿐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더울 것이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절망처럼 견디기 힘든 더위다.열대야에 잠 못 이루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더위를 생각한다. 집에서 더위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은 온 가족이 거리로 나가 밤을 지새고, 그러다가 차에 치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여름마다 거듭되는 그런 일들이 새삼 가슴 아프다.

지난 7일 입추가 지났고, 오늘이 말복이다. 며칠 사이에 문득 가을이 와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아침 저녁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을 때, 뙤약볕 사이로 한줄기 맑은 바람이 불어 올 때, 갑자기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지나가면서 아 가을이 오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올 여름엔 유난히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해서 '사이렌 매미'라는 별명까지 붙었다고 한다. 매미는 짝을 찾기 위해 울어대는데, 도시의 소음이 하도 시끄러워서 매미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는 글을 읽었다. 매미들도 공해 속에 점점 더 살기가 고달파지는 모양이다.

매미들은 어떤 날은 이른 아침부터 울어대고, 어떤 날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오늘은 왜 안 우니? 다른 동네로 갔니?"라고 큰 소리로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온 천지에 가득한 매미 울음 속에서도 가을이 느껴진다. 절정에 이른 매미 울음은 절정에 이른 여름의 상징이지만, 여름이 곧 기울어 갈 것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맹위를 떨치는 더위 속에 이미 가을이 와 있다는 것은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가르쳐 준다. 만개한 꽃은 곧 시들어 가고, 달도 차면 기운다. 정상에 오른 사람의 다음 길은 내리막이다. 절정의 순간 쇠퇴가 시작된다. 흥망성쇠의 섭리,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그 누가 거스를 수 있겠는가.

정권에도 사계가 있다. 권력무상을 잊은 채 칼 휘두르는 재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뙤약볕 사이로 문득 불어 오는 한줄기 바람에서 가을 냄새를 맡을 줄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6개월이 됐다. 대통령에 당선되어 환호하던 때가 벌써 1년 8개 월 전이다. 5년 임기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본다면 노무현 정권은 이제 여름으로 접어 들었다. 아직은 초여름이지만 한여름이 멀지 않았다. 여름이 절정에 이르면 가을 냄새가 깃들기 시작할 것이다.

정권의 봄은 꿈과 이상이 꽃피는 시기다. 살기 좋은 나라, 모든 계층이 두루 행복한 나라, 세계 발전에 기여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자는 도도한 열망이 화려하게 꽃필 때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의 꿈이 국민에게 전염되고 온 나라가 새 기운으로 들뜨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정권의 여름은 그렇게 뿌린 꿈의 씨앗을 땀 흘려 가꿀 때다. 무더위와 가뭄과 물난리가 닥치더라도 좌절하거나 핑계대지 말고 일해야 한다. 여름에 허송세월하면 농사를 망치고 수확할 것이 없다. 농부의 곳간은 그가 여름에 흘린 땀만큼 채워진다.

가을이 오면 열매들을 거두게 될 것이다. 초가을부터 늦가을까지 나라의 곳간에 땀 흘려 추진해 온 정책들의 성과가 하나 둘 쌓여갈 것이다. 가을은 보람찬 계절이어야 한다. 대통령 되기를 잘 했다, 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기 잘했다, 확실히 더 좋은 나라가 되었다라는 확신이 대통령과 국민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겨울에도 열매들이 곳간에 쌓여 갈 것이다. 그리고 꿈의 씨앗을 다시 심을 준비를 해야 한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간에 그 동안 일궈 놓은 기름진 토양에서 꿈의 씨앗이 크게 자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겨울은 그렇게 후회 없이 물러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그가 이끌어가는 이 나라의 사계는 어떤 모습인가. 아직 점수를 내기에는 이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여름은 좀 불안하다. 일하느라고 땀 흘리는 시간보다 싸우는 시간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정쟁거리가 못 되는 것을 정쟁거리로 삼으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절정을 이룬 무더위 속에 가을이 소리 없이 들어와 있다. 매미들이 사이렌처럼 악을 쓰며 울어댈 때 가을을 재촉하는 귀뚜라미도 울기 시작한다. 노무현 정부의 여름도 흘러가고 있다.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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