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의 끝자락에 서울 도심마저 텅 비었건만 유독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있다. '색채의 마술사-샤갈'전이 열리는 곳, 서울시립미술관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미술관에 당도하면 긴 줄을 만난다. 무더위에도 기다림의 시간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 그래도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지난달 15일에 개막한 샤갈전이 22일 만인(월요일은 휴관) 8일 관객 10만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5,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온 것이다. 10만명을 넘긴 전시회도 손에 꼽을 정도지만 한국 전시 사상 최단기간 기록이다.
돈 1만원 쓰기가 겁나는 어려운 시절에, 10년 만이라는 혹서에, 그리고 휴가철에 한 작가의 전시회가 이토록 성황을 이루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장은 "예술은 대중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철학을 거장답게 표현한 그의 작품들이 한국인의 현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해석했다. 정준모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샤갈전은 충분한 준비를 통해 작가의 시대별 작품이 적절하게 구성된 전시로 흥행만을 목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전시와는 다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 관객은 서울시립미술관 자유게시판에 "샤갈의 작품은 일반인에게는 사랑과 희망을, 예술종사자에게는 무한한 창작에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 같다. 이 고단한 시기에 우리 모두 샤갈과 함께 꿈꾸는 행복한 여름을 보냈으면 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미술계는 샤갈전이 새로운 문화현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중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예술감상 행위를 통해 현실과 삶의 태도에 대한 정서적 변화를 느끼고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미술전시회가 일부 애호가만의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처럼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흐름이다.
개막 후부터 평일 2,000∼4,000명 수준의 관객은 8월에 들어서는 5,000∼7,000명으로 늘어났다. 주말에는 8,000명을 넘어서 토요일인 7일에는 8,682명(유료 관객)이 관람했다. 6세 이하 등 무료입장까지 합치면 1만명에 근접한 수치다. 관람객은 학생들보다 가족단위가 훨씬 많고, 넓고 시원한 미술관은 도심의 새로운 피서장소이자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 등장했다.
한국일보가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서울시립미술관과 공동주최하는 샤갈전은 서울에서 10월 15일까지, 이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11월13일부터 2005년 1월 16일까지 열린다.
/한기봉부국장
kib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