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8월7일 미국 성직자 프랭크 네이선 부크먼이 83세로 작고했다. 부크먼은 도덕재무장운동(MRA)의 창시자다. 광복 이후 한국의 각급 학교에도 뿌리를 내린 MRA는 부크먼이 1921년부터 추진한 '인생개혁을 통한 세계개혁 운동'이 확대돼 그의 60회 생일인 1938년 6월4일 런던에서 정식으로 출범한 기독교윤리적 평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절대정직·절대무사(無私)·절대순결·절대사랑의 네 가지 덕목을 신조로 내세우며 인종·국적·계급·종교의 구별 없이 온 인류가 서로 화합할 것을 주장한다. 루터파 목사로서 1902년 이래 아시아와 유럽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부크먼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으며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했고, 그 평화는 신(神)의 인도 아래 개인과 국가들이 서로 이해를 넓힘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해 MRA를 출범시켰다.MRA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한 진영과 공고히 결합돼 있던 MRA 운동의 '도덕'은 그 우아하고 고결한 신조들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치장으로 맨살을 가린 전투적 반공주의에 가까웠다. 기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반공도덕'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교과목이 있었는데, MRA의 도덕이 바로 그 '반공도덕'이었다. MRA가 협동과 상호존중을 역설할 때, 그것은 이른바 '자유세계' 안에서의 협동과 상호존중일 뿐이었다.
MRA의 이런 '반공도덕적' 보수주의는 20세기 기독교운동의 주류이기도 했다. 종말론적 역사관과 번잡한 교리, 다른 신조에 대한 배타성과 엄한 규율 등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거의 언제나 서로를 원수처럼 헐뜯었다. 부크먼은 일제시대 때인 1915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1965년과 1966년에는 서울과 광주에서 각각 MRA 세계대회와 아시아대회가 열렸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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