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공주/조지 맥도널드 지음이수영 옮김ㆍ김무연 그림 / 우리교육 발행ㆍ7,000원
팬터지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19세기 스코틀랜드 작가 조지 맥도널드(1824~1905)의 단편모음 ‘가벼운 공주’가 나왔다.
마녀의 저주로 몸과 마음의 무게를 모두 잃어버린 공주가 한 왕자의 목숨을 건 사랑의 힘으로 마법에서 풀려난다는 내용의 ‘가벼운 공주’와, 아이들을 잡아먹는 못된 거인을 물리치는 용감한 오누이의 이야기 ‘거인의 심장’을 한 권으로 묶었다.
공주는 그저 아름답고 착하다든지, 나쁜 거인은 누구한테나 미움을 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같은 건 잠시 잊는 게 좋겠다. 가벼운 공주는 예쁘지만 결점 투성이이고, 못된 거인에게도 그를 감싸주는 너그러운 아내가 있으니까.
완벽하니까 사랑하거나 흠이 있으니까 미워하는 게 아니라, 부족하니까 더 안타까워 하고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게 그의 방식이다.
‘가벼운 공주’는 매우 아름답고 재미있고 독특한 동화다. 마녀의 저주로 몸과 마음의 무게를 모두 잃어버린 공주가 있다. 둥둥 떠다니고 약한 바람에도 날아간다.
영혼까지 가벼워져 진실함이나 슬픔을 모른 채 항상 깔깔 웃기만 한다. 이 불완전한 공주를 사랑하게 된 왕자는 매일 밤 호수로 공주를 찾아오지만, 공주는 왕자의 간절한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마녀는 공주가 사랑하는 호수를 말려버린다. 공주의 생명도 시들어간다. 누군가 호수의 물 새는 구멍을 몸으로 막는 수 밖에 없다는 예언에 따라 왕자는 공주를 위해 죽기로 결심한다.
왕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애절하게 공주를 바라보지만 공주는 다시 물이 차는 것을 보고 기뻐할 뿐이다. 마침내 물이 왕자를 삼켜버리자 그제서야 왕자를 물에서 꺼낸 공주는 왕자를 살리려고 애쓰면서 난생 처음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에 마법이 풀리면서 왕자는 되살아 나고, 공주는 무게를 되찾고, 바싹 메말랐던 왕국에 비가 내린다. 그 빗줄기가 독자의 마음까지 촉촉하게 적신다.
이 동화를 읽다 보면 공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화가 났다가, 왕자의 안타까운 사랑에 코가 찡해지기도 한다. 공주와 왕자가 달밤에 호수에서 헤엄치는 정경은 꿈속인양 아름답고, 왕자가 점점 차오르는 물 속에서 죽어가며 부르는 사랑의 노래는 가슴이 아프도록 애틋하다. 다분히 철학적이고 풍자적인 메시지가 담긴 이 동화는 100여년 전 작품이지만 전혀 낡지 않은 고전의 향기를 품고 있다.
‘거인의 심장’에서 주인공 오누이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거인을 혼내주려고 거인의 심장을 품고 있는 암독수리를 찾아간다. 거미들의 도움으로 거인의 심장을 빼앗은 오누이는 거인에게 더 이상 나쁜 짓 하지 말라고 하지만, 거인은 말을 안 듣다가 심장이 칼에 찔려 죽고 만다.
오누이 중 누나는 그래도 거인이 안 됐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무처럼 아삭아삭 씹어먹고 냄비에 넣고 끓여서 국자로 떠먹는 거인을 말이다. “거 잘됐군, 잘코사니!” 하고 만세를 부르는 무자비함보다, 훨씬 인간적인 이런 결말이 더 맘에 든다. 연민을 모르는 정의란 얼마나 잔인한가!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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