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이라고 합니다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
/이와사 메구미 글. 다카바타케 준 그림. 푸른길.
“지평선 너머에 사는 당신께. 나는 아프리카에 사는 기린이라고 합니다. 긴 목으로 유명하지요. 당신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기린으로부터.”
“기린씨께. 나는 고래곶에 사는 펭귄이라고 합니다. 나는 당신의 편지 때문에 처음으로 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전부 목일까요? 고래곶에 사는 펭귄으로부터.”
파란 하늘, 둥실 떠있는 구름, 시원한 바람, 맛있는 나뭇잎. 더할 나위없이 멋진 생활을 위한 완벽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없어 심심했던 기린은 지평선 너머에 있는 그 누구에게 편지를 쓴다.
배달은 그 역시도 심심한 펠리칸 담당이다. 편지를 쓰고부터 그들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진다. 무엇을 쓸까 생각하고 펭귄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느라 하루하루가 즐겁다.
한번도 보지 못한 서로에 대한 그들의 상상은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목이 없거나 전부 목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 앞에 뱀이 지나간다.
뱀이야말로 전부 목이거나 목이 없는 동물이 아닌가? 기린과 펠리칸은 뱀 모양의 몸통에 펭귄이 편지에 적은대로 부리와 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날개와 짧은 두 다리를 붙이고 흰색과 검은 색을 여러 형태로 칠해본다. 마침내 기린은 상상 속의 펭귄 모양으로 꾸미고 그를 만나러 간다. 전혀 닮지 않은 기린의 변장에 펭귄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지만, 곧 그 둘은 단짝 친구가 된다.
앞 책에 이어지는 ‘나는 고래곶에 사는 고래라고 합니다’에서는 전편에서 재미난 표현으로 독자를 즐겁게 했던 고래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그의 유일한 학생이던 펭귄은 자기 마을로 돌아가고, 그는 은퇴하여 혼자 살고 있다. 기린과 펭귄의 우정이 부러웠던 고래는 자기도 선생님 대신 ‘구지에몬씨’라고 이름을 불러줄 친구가 그립다.
그런데 나이 든 고래의 편지는 새로운 친구가 아니라, 어릴 적 친구들의 소식을 가져온다. 그리고 첫사랑 ‘미스 고래곶’도. 그들은 고래곶에 고래가 너무 많아 식량이 부족해지자 다른 곳으로 이사 갔던 것이다.
고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동창회를 열고, 밤늦도록 과거를 회상하다가 다시 한번 옛날처럼 고래곶 올림픽을 열기로 한다. 종목은 물개를 위한 수영대회, 펭귄을 위한 걷기대회, 고래를 위한 바닷물 뿜어올리기. 즐거운 올림픽이 끝나고 모두 돌아가고 나면, 고래곶의 구지에몬이 다시 쓸쓸해질까 봐 걱정이라고? 그런 일은 없으니 기대하시라.
이 책은 편지를 매개로 하여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과, 함께 사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편지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건의 발단이 되는 심심함이다. 때로는 심심할 때, 문득 뜻밖의 생각이 떠오르니까.
강은슬/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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