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고모리 요이치 지음ㆍ송태욱 옮김 / 뿌리와이파리 발행ㆍ1만2,000원
1945년 8월 15일 정오. 벌써 ‘천황의 옥음(玉音)방송’ 예고가 있었던 터라 마음 졸이며 라디오를 기다리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기미가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히로히토(裕仁)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전날 미리 녹음한 ‘종전 조서’ 800자가 전쟁과 식민지 종식을 알리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일제의 항복선언으로 알고 있는 이 조서에는 하지만 ‘항복’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항복’은 고사하고 ‘전쟁에 패했다’는 말도 없고, ‘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식의 표현도 없다.
여기서 미국과 영국과 중국과 소련이 합의해 정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형태로 ‘종전’의 개념을 표현하고 있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전쟁조차도 미국과 영국과 벌인 1941년 이후의 전쟁에 한정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비판에 앞장서고 있는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 도쿄대 교수는 이 책에서 침략의 과거사를 쉽게 잊는 전후 일본의 위태로운 자기인식이 전쟁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은 히로히토의 이 모호한 ‘종전 조서’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이러한 전략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체의 과거 역사에 대한 미화, 부정으로 이어졌다. 또 소련에 대한 방어선으로 일본을 이용하려 했던 맥아더와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도 천황에 대해 면죄부를 내리고 신격화하면서 이런 과정에 일조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 중인 ‘종전 조서’ ‘인간 선언’의 한글 완역본과 일본어 영인본도 실었으며, 이들의 작성 과정과 문구 하나하나에 담긴 치밀한 계산도 상세히 기술했다.
고모리 교수는 이 책을 내고 일본 독자들에게서 ‘자신이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해 모호하게 느껴온 이유를 알게 됐다’는 편지를 숱하게 받았다고 한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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