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 이해인 지음분도출판사/9,500원
수녀들에게는 ‘빨래번호’라고 부르는 고유번호가 있단다. 옷이나 사물(私物)에 새겨 서로의 물건이 뒤섞이지 않도록 하려는 번호인데, 이해인 수녀는 88번이다. “초년시절 갈등이 깊어 원장수녀께 여쭸더니 그 말씀을 주시더군요. ‘88번을 눕혀놓으면 나비 같지요. 나비처럼 이웃에게 행복 주는 수녀님 되세요.’”
꽃시집으로 이름 단 그의 시집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가 나왔다. 기왕에 발표했던 꽃 관련 시들에 30편 가량을 새로 보태고 보니 우연찮게 88편. 시집은 글의 향기와 소담한 꽃, 나비까지 어우러져 펼쳐만 놓아도 금새 행복해질 듯 정갈한 꽃밭이다.
그에게 한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는 ‘도라지꽃’은 “엷게 받쳐 입은/ 보랏빛 고운 적삼/ 찬 이슬 머금은/ 수줍은 몸짓/ 사랑의 순한 눈길/ 안으로 모아/ 가만히 떠올린 동그란 미소’의 모습이다. 시인은 “왠지 기도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그 꽃을 두고 ‘눈물 고여 오는/ 세월일지라도/ 너처럼 유순히/ 기도하며 살고 싶다’고 조용히 뇐다. 시편 마다 화가 하정민씨의 꽃 그림과 함께 관련 단상들을 달았는데, 대개가 수녀 40년 마음 닦음으로 남은 삶의 경구로도 읽힌다.
그에게는 시가 이웃과 교류하는 창구다. “그네들이 편지나 엽서로 전하는 눈물과 행복과 삶의 상념들이 단절된 공간에서 자칫 관념에 머물 수 있는 저의 시에 피를 돌게 합니다.” 해서 그의 시는 사랑에 상처 입은 이들을 두고 ‘…바람아/ 너는 알겠니?/ 네 하얀 붕대를 풀어/ 피투성이의 나를/ 싸매 다오…’(사르비아의 노래)라며 함께 아파하고, 너무 많이 사랑해 외로운 이들에게는 ‘…/ 하늘 한 번 보지 않고/ 자주빛 옷고름으로/ 눈물 닦으며/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땅 깊이 묻으며…’(할미꽃)라며 감싸 안는다.
시인의 꿈은 동화를 쓰는 일이라고 한다. “시집 8권에 동시집은 1권 뿐이예요. 그게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동화는 일흔 너머에나 욕심을 내볼까 봐요.”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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