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본부에 모여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의 기본 골격(Framework)에 합의했다. 이로써 지난해 9월 멕시코 칸쿤에서 결렬된 DDA협상은 교착국면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이번 합의는 미국, 유럽연합(EU), 호주, 인도, 브라질 등 주요 5개국(G5)의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WTO 회원국 전반의 현실적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상당수 회원국들이 기본 골격 합의에 실패할 경우 DDA협상이 장기 표류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해왔다.
물론, 이번 기본 골격 합의가 DDA협상의 순조로운 미래를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협상이 타결에 이르려면 기본 골격을 토대로 구체적 수치를 포함한 세부원칙(Modailties)에 대한 최종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원국들은 기본 골격에서 관세가 높은 품목이나 국내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국가일수록 더욱 큰 폭으로 관세와 보조금을 삭감한다는 조화방식에 동의함으로써, 수출 주도의 우리 경제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이 가운데 농업 분야만 놓고 보면 국내 농업시장의 추가 개방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합의안은 관세 상한 문제를 추후 평가 과제로 돌리고 민감 품목 및 쌀이 포함된 특별품목(SP)에 대해 신축성을 부여함으로써 개방의 피해를 완화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개방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도하개발아젠다 세부원칙 협상에서 반드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야만 한다.
문제는 내년 12월 홍콩에서 개최될 예정인 제6차 WTO 각료회의의 세부원칙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농업부문에 유리한 협상안을 이끌어 낼 가망성이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협상 테이블 내에서 개방과 보호를 위한 현실적 의제를 설정할 만한 능력이 빈약하며, 우리 농업 보호를 위한 확고한 의지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일반이사회에 대표단을 파견해 농업수입국들(G10)과의 공조를 통해 개입력을 높일 계획이었지만 정작 타결 시한을 앞둔 지난달 30,31일의 그린룸 회의에는 참가조차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 농업 위기의 근본원인이 농업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무역의 확대를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면 위기 극복의 대안과 방법은 대외적 개방과 대내적 조절이 병행 추진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농업을 희생시키면서 공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패러다임은 한계에 봉착했다.
무엇보다 농업의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인식전환이 절실하다. 돈만 주면 언제든지 식량은 사먹을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세계 곡물시장은 지속적인 공급부족 상태에 처해 있다. 더욱이 곡물시장은 소수의 곡물 메이저가 독점하는 전형적인 독과점 시장이다. 이런 가운데 2003년의 경우 우리나라 곡물자급도는 26.9%로, 하루 3끼 중 2끼는 외국에서 사다 먹는 격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고려하고 기상이변, 전쟁, 외환위기와 같이 예상치 못한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적정수준의 농업생산기반의 유지와 보전이 필수적이다. 특히 쌀은 반드시 자급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를 위해 식량자급률 목표치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하던 호랑이가 할머니를 잡아 먹고 끝내 오누이의 목숨마저 위협한 얘기는 결코 동화 속 먼 얘기가 아니다.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 있는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개방의 높은 파고 속에서도 자국의 농업을 적절히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민수 전국농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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