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국일보에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내가 일하는 광릉 숲에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숲과 그 숲에 사는 식물들의 모습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전하는 내용이다.하지만 쓰다 보면 깊이 있는 과학과 생각을 담고 싶고, 읽는 사람들이 '아! 정말 그렇구나'하며 주변의 사소한 풀과 나무에 눈과 마음을 두게 되는 그런 편지를 쓰고 싶어 매주 고생을 한다. 거창한 뜻을 두지 않고 소박한 글을 쓰고자 하지만 알고 보면 대단히 큰 욕심을 부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처음엔 서너달 쯤 써보자고 한 일이 어느새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한 주에 하나씩 우리 풀이나 나무를 '주간한국'에 소개하는 일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으니, 해야 할 일이 늘 쌓여있어 바쁘고 분주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일상 중에 한 주에 한번 한국일보와 접속하는 일은 여간 큰 부담이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시간은 한국일보를 향해 썼다기보다 결국 내 스스로를 위한 큰 투자였던 셈이다. 이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글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만나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결실로 책이 묶여지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식물들과 새롭게 만나며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식물들과 새로이 만나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으니…. 덕분에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있는 식물학자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일보를 생각하며 거슬러 올라가니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아이들처럼, 나도 '소년한국일보'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신문이란 것을 소년한국일보를 통해 인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뽑혀 활동하던 어린이 기자들을 크게 부러워했던 마음이 신문 혹은 언론에 대한 첫 동경이 아니었나 싶다. 낙도에 소년한국일보를 보내는 일을 후원했던 것도 그때 신문이 나에게 준 영향 때문이리라. 한국일보사 인근 안국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니 당시로는 꽤 컸던 신문사 건물 위의 높다란 탑은 하나의 깃발처럼 가슴속에 여전히 동경으로 남아있다.
식물을 공부하게 되고 한 두 꼭지씩 한국일보와 인연을 맺어가면서, 식물에 대한 관심이 그리 일반적인 추세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이상으로 풀과 나무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좋아하시던 이계성 국제부장님이 참 고맙고 인상적이었다. 또 지난 해 안국동의 작은 식당에서 장재구 회장님을 만나 세계의 나무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놀라움과 즐거움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즈음 난 큰 연고도 없는 한국일보와 함께 식물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한 식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듯 하다.
지금도 쓰고 있는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가 국내 한국일보 독자뿐 아니라 한국일보를 사랑하는 미주지역 곳곳의 교민들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된다면 더없이 보람되지만 무엇보다도 식물학자로서 내 인생에 큰 의미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일천한 지식이 이미 일찌감치 바닥나고 어떤 글을 올려야 할지 고민하며 읽어간 책은 차치하고라도 그저 학문을 위한 학문에 빠져들지 않고 적어도 내가 공부하는 그 식물과 순수하고 온전하게 시간을 공유하며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해 언제나 마음을 담아 보고 관찰하고 빠져들고 깊이 이해해가는 행복한 식물학자가 돼가니 말이다.
한국일보가 어린 시절의 동경에서 이제 식물을 공부하는 내 삶에 새로운 의미가 되었듯 앞으로 다가올 50년은 더 많은 이들에게 꿈이며 행복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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