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를 예견하면서 미래학자들은 깊고 푸른 정보의 바다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그들의 예측대로라면 초고속 인터넷 접속에서 세계 정상을 달리는 한국에 가장 먼저 그런 바다가 펼쳐져야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정보의 바다는 혼탁하기 이를 데 없다. 가요산업 기반 자체를 흔드는 저작권 침해 등은 그나마 고상한 문제에 속한다. 이 바다의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은 끊임없이 흘러드는 오염된 컨텐츠다. 처리장을 거치지 않은 산업폐수나 생활하수처럼 온갖 스팸 메일과 바이러스, 욕설이 마구 흘러들어 떠다니고 있다.■ 그 많던 미래학자들이 간과한 것은 무엇일까. 정보의 바다는 어느날 문득 우리가 자동차로 달려가 감동으로 만나는 자연의 바다와는 달리 객체로서, 대상으로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애초부터 인간의 참여를 통해서만 비로소 형성되는, 말을 비롯한 인간의 온갖 의사 전달 수단이 모여들고 소통되는 곳이다. 그것을 낭만적 정서를 자극하는 바다로 본 것은 뉴턴의 '지(知)의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줍는 소년'이란 수사(修辭)에 현혹된 때문인지도 모른다.
■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말이 유행어가 돼 있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편재하는)'을 뜻하는 라틴어 어원의 영어 형용사다. 지금은 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Computing)'이나 '유비쿼터스 억세스(Access)'를 가리키는, '언제 어디서나 전산망에 접속 가능한'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 휴대폰의 기능이 날로 확장돼 원래의 휴대용 개인정보 단말기(PDA) 못지않아지고, 전산망 접속이 가능한 '네트워크 가전'이 본격 등장하는 등 착착 물적 조건이 갖춰지고 있어 오히려 말의 수입이 늦은 감도 있다.
■ 그런데 영어사전이나 미국 검색엔진을 뒤져도 지금 국내에서 쓰이는 '유비쿼터스 혁명', '유비쿼터스 사회'따위의 말은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 의미의 형용사로만 쓰일 뿐이다. 그러니 '한국의 유비쿼터스 혁명'을 운운하다간 전국 곳곳에서 매일같이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굳이 내용상 새로울 것이 없는 '유비쿼터스'를 남발하는 것은 어딘가 권위를 풍기는 라틴어 특유의 어감에 현혹된 결과는 아닐까. 차라리 현 단계의 정보화 혁명을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에 빗대 '자유(Liberty)! 평등(Equality)! 유비쿼티(Ubiquity)!'란 구호로 정리할 수는 있을 듯하다. 그러나 언어 파괴가 일상화한 우리 정보의 바다에서는 이 또한 언어의 공해일 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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