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13회 아시안컵 축구 결승 진출로 베이징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그 열기가 결승 상대국인 일본에 대한 적개심으로 비화하고 있다. 7일 베이징 노동자 경기장에서 열릴 결승전을 앞두고 중국인들의 대일 적개심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상식적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중국 축구 대표팀이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20년 만에 결승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기 때문에 "13억 중국 인민이 모두 둥근 축구공만 쳐다보고 있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과도한 열기의 저변에는 아시아를 정치, 경제적으로 제패하자는 중국의 팽창주의와 중화(中華)주의가 깔려있다는 점에서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특히 중국과 우승을 다툴 상대가 일본이라는 점이 중국인들을 잔뜩 흥분 시키고 있다. 중화주의에 반일 감정까지 겹쳐 "패배는 죽음"이라는 식의 극단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중국 축구 대표팀 골키퍼 류인페이는 "인민 전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반일 감정을 드러냈다.
최근 중국 인터넷 인기 포털사이트인 시나닷컴(新浪網) 등의 게시판에는 극성 네티즌 치우미(팬)들이 보내온 반일 감정의 글이 넘쳐 나고 있다. "항일 전쟁의 정신으로 일본을 제압해야 한다", "일본을 무찔러 영유권분쟁의 근원인 댜오위다오(釣魚島)를 찾아오자", "청·일 전쟁 110주년을 맞아 원한을 잊지 않고 복수의 세월을 참고 기다려온 중국인의 끈질긴 근성을 살려 일본을 무찌르자."
스포츠가 아니라 전쟁을 앞두고 결의를 다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여기에다 최근 일본이 선수단 가이드북에 대만을 독립국으로 표기한 것이 알려지면서 중국 팬들의 반일감정은 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중국 치우미들은 최근 일본의 대 요르단전에 이어 바레인 준결승전 경기장에서 일본국가가 연주되자 격렬한 야유를 보냈고, 경기 종료 뒤에는 일본 선수들과 응원단에게 쓰레기를 던지기까지 했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경기가 열린 충칭(重慶), 지난(濟南) 등이 과거 중·일 전쟁의 무대로 중국인들이 대거 희생된 지역이어서 반일감정이 더욱 격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런 대립이 불상사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3일 직접 나서 "스포츠는 우호의 제전이기 때문에 일본선수도 외국선수도 따뜻하게 환영 받아야 한다"며 "스포츠에 너무 정치의식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문부과학상도 기자회견을 갖고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는 대원칙을 중국 정부도 충분히 알고 대처해달라"는 취지의 경고를 보냈다.
중국 팬들의 반일감정이 단순히 축구경기에 국한 된 것이 아닌 뒤틀린 '중화주의'와 접목되는 점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중국의 경제 급성장과 패권주의적 군비증강은 아시아를 뛰어 넘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일본 뿐 만이 아닌 한국에 대한 감정 역시 예사롭지 않다. 중국 축구의 '공한증'을 극복하려는 기대가 저급한 공격성으로 나타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국이 이란에 패하는 바람에 중국과 조우할 기회를 잃었지만, 중·일 결승전의 살벌한 긴장감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의 반일감정과 '공한증' 뒤에 숨어있는 중화주의의 날카로운 발톱을 상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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