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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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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폭염

입력
2004.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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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밤낮도 없이 푹푹 찌는 날씨가 보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사무실을 나와 잠깐을 걸어도, 온몸이 땀에 젖는다. 불볕이 소나기처럼 퍼붓고, 아스팔트는 복사열을 뿜어댄다. 휴일에 식구들과 계곡에 발이라도 담그려고 나서 보면, 우이동 길이 꽉 막혀 있다. 북한산성 쪽으로 방향을 돌려 보면, 그 길 역시 차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숨도 막히고 길도 막힌다.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와 선풍기를 틀고, 휴가용 전국지도나 펴본다. 지도 위엔 웬 길이 그렇게 잘 뚫려 있나. 육로와 해로들이 시원하다. 지도는 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유혹적이다.■ 1970년대까지도 여름이면 개울과 강으로 천렵을 갔다. 맘 맞는 사람끼리 반두와 솥단지를 들고 개울물에 첨벙이며 피라미 붕어 등을 잡는다. 고추장 푼 물에 잡은 물고기와 감자, 라면을 넣고 끓인 후 소주잔을 부딪치면, 더위와 직장 스트레스는 저만큼 물러나게 마련이었다. 산업화 이후 천렵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산림이 우거지고 개울물도 늘어나 피라미들도 많아졌건만, 이젠 천렵한 물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시골마다 개천 상류에 목장들이 들어서고 가축 분뇨가 물로 흘러들어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건강한 여름나기 풍습 하나를 잃어버렸다.

■ 지구온난화 이후 한반도가 한층 무더워지는 듯하다. 베이징과 상하이, 도쿄의 길고 뜨겁던 여름이 마침내 한반도에도 정착하는가 보다. 관광 안내원에 따르면, 중국에는 39도인 날은 많지만 40도인 날은 극히 드물다. 40도가 넘으면 직장들이 공식 휴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날에는 "39도"로 발표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10일 파리는 평년보다 16도가 올라간 40도를 기록했다. 다음 날 스위스 그로노지역도 139년만의 최고인 41.5도였다. 더한 기록도 많다. 1820년 이후 최고 더위는 1922년 9월13일 멕시코 프트시 산 루이스의 58도라고 한다.

■ 지난해 이상고온으로 유럽에서 1만5,000명이 사망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30도가 넘는 날이 91년 33일에서 2000년에는 53일로 늘어났다. 몇십년 만의 무더위라는 1994년 여름, 사망자도 1,000명 가까이 늘었다. 그 지독했던 여름을 겪은 탓인지, 올 여름 더위가 그 해만큼 겁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이 최근 겨울 한파주의보 수준의 폭염주의보를 신설키로 한 것에는 크게 공감한다. 기억에 남은 영어 문장이 있었다. '날씨에 대해서는 누구나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아무도 어쩌지는 못한다.' 문명의 힘으로, 이 말을 수정할 때가 된 것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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