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바꾼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요즘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신문 대신 포털사이트의 뉴스서비스를 이용하고, 시간 맞춰 드라마를 보는 대신 방송사 홈페이지의 VOD서비스를 이용한다. 멍하니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게시판에 의견을 남기고, 동호회에서 다른 이들과 교류를 한다. 그러면서 '다모폐인'군이 형성되기도 하고, 소규모 사이버시위도 생겨난다.지금의 시청자는 10년전 시청자가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프로그램만 보고 마는 이들이 아니다. 상호작용에 대한 심리적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과연 방송 제작자들은 같은 준비가 되어있을까? 시청자들의 적극성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자세가 되어있을까?
인기 드라마의 경우 하루 5,000건 이상의 시청자 의견이 올라온다. SBS '파리의 연인'의 경우, 드라마가 시작된지 50일만에 1만건 이상의 글을 올린 사람도 여러 명이다. 7월27일 방영된 MBC 'PD수첩―친일파는 살아있다'에 대한 시청자 의견은 일주일 사이 2,000건 이상이 올라와있다. 예능오락 프로그램도 한 회분에 수백 건의 의견이 올라오는 것은 보통이다. 물론 이들이 모두가 제작진에게 읽어달라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제작진들이 이들의 피드백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드라마 제작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제작자들은 인터넷 게시판의 시청자의견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간적 느낌과 감상을 쏟아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서, '시청률'이야말로 시청자들의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시청자 게시판을 근거로 방송사가 작성하는 '시청자의견 보고서' 또한 거의 참고하고 있지 않았다. 간부들도 시청자의견 중 '옥의 티' 지적에 대한 시정지시만을 내리는 등, 보고서가 사내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용자 중심' 방송과는 거리가 있는 현실이다.
그나마 시청자의견이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부분은 소재발굴과 기초자료수집이다.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은 '시청자 제보'란을 운영하고 있으며, 예능오락 프로그램인 SBS의 '야심만만'은 소재제보 및 설문조사에 인터넷을 활용한다. 하지만 시청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도구로 보기는 어렵다. 방송사의 홈페이지는 시청자들이 놀러와서 잡담도 하며 즐기는 공간이다. 그러나 피드백의 기제가 보장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시청자 주권은 공염불일 뿐이다.
얼마전 디지털TV의 표준이 확정되었고,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도 곧 시작될 예정이다. 하드웨어는 빠르게 진화하는데 정작 시청자에 대한 방송 제작진들의 인식은 여전히 하향식 방송체제를 못 벗어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오히려 라디오는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며 '되살아난 매체'가 됐다. 청취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방송에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제작진은 이들을 위해 사진을 제공하거나 말대꾸도 해주면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TV도 똑같은 방식을 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의견을 정말 진지하게 들을 자세는 먼저 갖춰야 하지 않을까. 애정 있는 시청자들의 충고가 시청률보다 더 큰 압력으로 느껴지기를 기대한다.
윤태진/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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