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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취미]박진 한나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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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취미]박진 한나라당 의원

입력
2004.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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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뒷편 인왕산 입구에 자리잡은 국궁(國弓) 활터 황학정(黃鶴亭). 1분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뙤약볕이 내리꽂힌다.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며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사대(射臺)에 오른다. 정자 중앙에 모신 고종황제의 초상화와 '황학정'이라고 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에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나서다. 사대에 자리를 잡고선 "활 냅니다"라고 주변 한량들에게 '초시례'(初矢禮)를 갖춘다.박 의원은 복식호흡으로 아랫배와 엉덩이에 잔뜩 힘을 주어 하체를 단단히 고정시킨 뒤에야 허리에 두른 궁대(활집)에서 살을 뽑아 시위에 끼운다. "아낙이 물이 가득찬 물동이 들 듯" 조심스레 살을 이마위로 올려 145m 전방의 과녁을 겨눈다. 일순 눈매가 매서워진다. "호랑이 꼬리 당기듯" 시위를 한껏 당긴 오른팔 근육이 꿈틀대고 온몸이 푸들푸들 떨린다. 튕겨져 나간 살이 "쉬이익"하며 날아간 지 2,3초. "탁" 소리를 내고 과녁에 부딪힌다. "관중이요!" 지켜보던 한량들이 덕담을 건넨다.

박 의원은 국궁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매주 한두 번 황학정을 찾은 게 2002년 여름 이후 3년째다. "당시 8·8 재보선 선거운동 중에 황학정에 들렀다 배우게 됐다"고 한다. 실력은 살 5대를 쏘아 1대를 맞추는 정도. 45대 중 25대를 맞추는 실력을 단수 중 가장 낮은 '초단'이라고 하니, 아직 단수에 못드는 초보 수준이다.

박 의원은 "그래도 열정만은 명궁 못하지 않다"며 국궁 예찬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는 2월 서청원 전 대표의 석방 동의안 파문으로 대변인 직을 내놓을때도, 지난달 김선일씨 사건 진상조사 차 이라크에 가기 위해 최고위원 출마를 포기할 때도 활을 쏘며 복잡한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그는 3월 당대표 경선서 활시위를 당기는 힘찬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사용한 게 득표에 도움이 됐다고 믿고 있다.

박 의원은 "국궁은 뱃살 빼는 데도 그만"이라며 "허리띠 구멍 몇 개를 줄였다"고 귀뜸했다. "활을 쏘기 직전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면서 단전 호흡도 되고, 격렬하게 움직이진 않지만 허리와 목, 팔다리 등 온몸의 근육을 사용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시위를 놓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확 풀리면서 밀려오는 아찔한 쾌감이 최고의 묘미라고 한다. 시간 구애를 별로 받지 않고, 활과 살, 궁대와 깍지(쇠뿔로 된 골무)등 장비 가격이 20~40만원 선으로 비교적 저렴한 것도 매력으로 꼽았다. 활쏘기가 정신건강에 좋다는 건 공자도 '인자여사'(仁者如射·어진 이는 활 쏘는 사람과 같다)라는 말씀에서 진작에 인정한 바란다.

박 의원은 "국궁은 정치와 닮은 점이 많아 정치인 취미로 안성맞춤"이란 이론도 편다. 우선 "활을 배우고 쏠 때는 말을 삼가야 한다"는 뜻의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는 말처럼 정치도 말을 아껴야 한다. 시위를 너무 힘껏 당기면 손이 베이듯 정치도 과욕을 부리다간 상처나기 십상이고,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원하는 목표점을 향해 똑바로 나아갈 수 없다.

그는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제대로 안 되는 것도 닮았다"고 웃으며 다시 한번 시위를 당긴다. 이번엔 "쉬이익"소리만 요란하게 나고 과녁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정치나 활쏘기나 방심하지 말고 말을 아끼며 똑바로 하라는 명궁님들의 질책으로 알겠습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이한웅 황학정 사무총장 "생각이 올곧아야 살도 바로 나가"

"명색이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이 활 하나 제대로 못 쏘아서 되겠는가."

박진 의원이 쏜 활이 과녁을 벗어나자 국궁 사부인 이한웅(58) 황학정 사무총장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찬다. 박 의원은 연신 "잘하겠습니다"며 머리를 조아린다. 알고보니 둘은 박 의원이 1980년 해군장교 교육을 받을 때 후보생과 훈육관 관계. 박 의원은 "그 때 영화 실미도 빰 치는 훈련을 받았다"며 "요새도 장군님의 불호령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고 했다.

2002년 박 의원에게 국궁을 처음 소개한 이가 이 총장이다. 해병대 준장으로 예편한 그는 양궁은 30년, 국궁은 15년 넘게 갈고 닦은 고수다. "보고 배우라"며 이 총장이 살을 날리자 과녁 한 가운데 큰 동그라미에 명중한다. 박 의원은 "역시 사부님이십니다"라고 감탄한다. "충무공의 후예는 활쏘기에도 능해야 한다"는 게 이 총장의 지론이다.

이 총장은 8·8 재보선을 앞두고 박 의원이 초조해 하는 게 안타까워 "무조건 황학정에 나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박 의원에게 살이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진취성과 사심이 일절 없어야 과녁을 맞출 수 있는 청렴함 등을 몸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올곧은 생각만 하는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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