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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수도 이전 '교과서대로'

입력
2004.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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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적 토론이 선행되어야 할 수도 이전 논의가 정당과 언론 그리고 전문가들의 정치싸움으로 이미 변질된 형국이다. 이는 수도 이전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국토계획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 설정 및 수도권 과밀과 지방 공동화라는 상황인식 자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실종된 데 주로 기인한다.이러한 공감대 실종의 가장 큰 원인은 수도 이전에 대한 현 단계의 논의가 첫째 목표 설정, 둘째 상황 분석 및 예측, 셋째 대안 설정 및 평가, 마지막으로 집행의 단계를 밟는 정상적인 국토계획의 절차적 측면과 유리되어 있다는 데 있다.

수도 이전이라는 중차대한 국책사업에 계획목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부재는 절차적 측면을 강조하는 정상적인 국토계획의 실종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러니다.

국가의 존망을 가름할 수도 있다는 수도 이전 사업이 국민적 공감대에 근거한 목표 설정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현 정권은 계획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집행 단계를 강제하고 있다. 수도 이전과 수도권 규제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여 수도 이전이 순조로우면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등 각종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소위 '신행정수도와 수도권 규제 개혁 및 폐지'의 '빅딜'과 같은 발상이 대통령 정책자문위원장에 의해 제기되기도 한다.

이것은 수도 이전 사업이 국토 균형 발전과 수도권의 경제적 비효율성 해소라는 명시적 목적과는 유리된 정치적 목적의 사업이라는 반증이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일부 전문가들이 제시하고 있는 수도 이전에 대한 대안들 역시 정상적인 국토계획 절차와는 유리된 것이다.

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일부 전문가들이 개인적으로 제시하는 대안들은 '수도 이전 국민투표 하자' '국회가 다시 민의 수렴' '거국적 합의기구 설치' '수도 이전보다 대학도시 건설' '신행정수도 대신 특별행정시 건설' '기업도시 건설' '통일수도도 국민투표를' 등등 너무 다양해서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 역시 계획목표의 설정과 상황 분석 및 예측이라는 국토계획의 첫째와 둘째 단계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

이는 비판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라는 정부의 정치적 주장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역시 정상적인 국토계획의 절차적 측면과는 거리가 멀다. 대안을 제시하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도시계획을 전공하는 학자인 점을 고려하면 목표 설정과 상황에 대한 인식 부재 상태에서 대안 제시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국가 공간 계획에 대한 목표 설정과 상황 인식 자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수렴할 수 있는 통합적 합의기구 마련이 최우선시되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객관적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논의의 장 자체를 현 정권이 부정하는 데 있다.

수도 이전에 대해 수십 회에 걸쳐 객관적 논의의 장을 마련했는데도 언론과 국민이 무시했다는 대통령의 주장이나 대선과 총선으로 국민들이 수도 이전을 승인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

현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찬성과 반대의 위치에 있는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을 하나의 제도화된 장에서 모이게 하는 일이다. 제도화된 기구에서 수도 이전과 관련한 모든 객관적 증거를 국민에게 제시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 국토계획의 절차다.

이성우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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