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출판계 불황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불황의 정도는 통계에 잘 나타난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2004년 문예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신간 도서 발행량은 학습 참고서와 만화를 포함해 총 3만5,371종, 1억1,145만 여부에 이른다. 2002년 같은 기간에 비해 종수는 2.3%, 부수는 5.1% 각각 줄었다. 또 지난해 출판시장 규모는 2조4,463억원으로 나타났다. 1997년 4조원이 넘었던 시장 규모가 1999년 크게 감소한 후 점차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점들도 줄어들어 1994년 5,683개였던 것이 2002년 2,328개로 감소했고 올해는 2000개에도 못 미칠 것으로 추산된다.■ 2년 전 도서출판 한길사가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한 은행으로부터 20억원을 신용대출 받았다. 아무런 물적 담보가 없었지만, 앞으로 베스트 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무형 자산인 출판권이 신용담보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은행 관계자는 '로마인 이야기'의 판매 실적과 독자 반응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충분한 담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1995년에 1권이 번역 출판된 이 책은 2006년 15권이 모두 나오면 1,000만부 이상 팔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자금력이 부족한 출판사가 외부에서 투자받아 책을 낸 후 투자자와 수익을 배분하는 '북 펀드'형 출판이 시도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에 대한 투자와 같은 맥락이다. 현대기업금융은 최근 문화컨텐츠 투자의 한 방법으로 '출판금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출판 투자 사업을 시작했다. 6월에 출간된 뿌리와이파리의 '해삼의 눈'이 첫 사업이다. 회사측은 성공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계획으로, 연간 최대 100건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문화 벤처기업인 조이에듀넷은 지난달 말 제1회 북 펀드 설명회를 가졌다. 이 회사가 기획해 2006년 중반에 완간할 '한국을 빛낸 102인 대하 역사소설 전집'의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다.
■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조성하는 '글로벌 북 펀드'도 등장했다. 한·일 합작 출판사인 에이지21은 얼마 전 한국에서 2억1,000만원, 일본에서 4억원의 펀드를 만들어 양국에서 각각 책을 발행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일본어판으로 발간할 책은 TV 드라마 '올인' 및 '겨울 연가'의 원작이다. 일본에서 조성된 북 펀드로 한국에서 출간될 책은 1차분 12권이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이 같은 움직임은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출판계로서는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도록 기대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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