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짜리 초등학생이 지리산 등반 중 실종됐다가 40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서울 동명초등학교 4학년 정희재군이 실종된 것은 지난 1일 오후 7시께. 아버지 정하이(37·회사원)씨 등 가족과 친지 7명이 함께 등반을 하던 중 해발 1,600m 지점인 세석산장에서 장터목산장에 이르는 등산로에서 "앞서 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혼자서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 정군은 등산로를 찾아 헤맸지만 날이 이미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불빛이 깜박여 "살려달라"고 소리도 쳐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첫날 밤 어둠 속에 겁에 질린 정군은 "우리나라 산에는 사나운 짐승이 살지 않는다"는 아버지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냈다.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바위틈에 끼어 잠을 청했다.
이튿날 산을 내려오던 정군은 바위에서 미끄러져 머리와 다리에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 배가 너무 고플 때는 계곡에 내려가 물로 배고픔을 달랬다. 이날 오후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비가 내리자 "산에서 비를 맞고 잠을 자면 죽을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침낭을 뒤집어 쓴 채 뜬눈으로 밤을 샜다. 정군은 실종 사흘째인 3일 오전 10시30분께 경남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계곡 가네소폭포 근처에서 등산객 김홍기(47·서울 서초구)씨에게 발견돼 어머니 김경자(35)씨와 휴대폰 통화를 할 수 있었다.
2박3일 간 산속에서 헤맨 끝에 극적으로 구조돼 함양 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정군은 "엄마, 아빠를 다시 볼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 혼자서는 등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씨는 "무사히 아들을 찾아내 기쁘다"며 눈물을 흘렸다. 병원 관계자는 "정군은 약한 탈진상태여서 영양제와 수분을 섭취하면 곧 퇴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군이 발견된 곳은 세석-장터목 등산로에서 4㎞ 정도 떨어진 곳으로, 경찰과 119구조대원 등 100여명은 구조견 2마리를 앞세우고 사흘간 수색작업을 벌였다.
/창원=이동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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