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참 정겹고 가슴 뭉클한 노래죠. 어린 시절 풍금소리에 맞춰 제비 모양 입을 쪽쪽 벌리며 불렀던 동요 '고향땅', 기억 나시나요? 아쉽게도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이 노래를 알지 못합니다. 교과과정이 바뀌면서 교과서에서 빠졌기 때문이지요. 이창규(70·서울 은평구 불광2동) 선생은 나이드신 어르신들과 손주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동요가 자꾸 사라지는 것이 참 안타깝다고 하세요. 나이 칠순에 '동요전도사'로나선 이유랍니다.
"동요를 어린이 전용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동요는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 만들어주는데 이게 노인들 치매예방에 특효거든. 노래를 하면서 천진난만했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두뇌활동에 자극을 주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해주니까요."
이창규 선생은 은평노인복지관이 국내선 처음 개설한 노인 동요교실의 인기 강사입니다. 지난 4월 첫 선을 보인 동요교실은 입소문을 타고 매월 70여명의 노인들이 참가할 만큼 성황이죠. 아침 9시반, 노인들이 움직이기엔 다소 이른 시각이지만 동요교실은 늦을 새라 성장을 하고 나온 동요애호가들로 늘 북적인답니다.
"초봄에 복지관 문학반 친구들과 반장집에 놀러갔었는데 그 집에 피아노가 있었어요. 노래나 부르며 놀자고 내가 동요반주를 시작했지. 그랬더니 다들 노래를 같이 하는데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어요. 복지관에 동요반이 생겨야한다고 이구동성이더니 정말 동요교실이 만들어지고 나더러 강사를 하래요. 그런 기회를 놓칠수 있나요, 하하."
이 선생은 20대 청년부터 시작해 1999년 8월 은평구 은혜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평생을 초등학교 음악교육에 헌신했습니다.
직접 작곡한 곡만해도 '단짝이다' '아카시아꽃' '먼저핀 진달래' '산새 물새' 등 100여곡이 넘고, 현재도 한국동요음악협회의 감사로 일하고 있는 열혈 동요작곡가이지요.
동요교실은 이론이나 발성연습을 따로 하지않습니다. '실음'을 통한 음악교육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 선생의 지론 때문입니다. "직접 불러보면서 감각적으로 익히는 것이 최고의 음악교육이예요. 더구나 복지관에 오는 노인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생전 1/4음표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들 모두가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갖도록 도와주는 게 내 임무라고 생각해요."
이 선생은 동요교실을 운영하면서 이 달에는 복지관내 한문서당에 다니는 꼬마들을 초청, 할머니 할아버지와 동요함께 부르기 시간을 갖는 등 세대화합에도 힘쓸 계획입니다. 효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는 핵가족시대에 동요를 함께 부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시간을 갖자는 생각이지요.
"요즘 아이들이 부르는 '아기염소'라는동요를 우리 세대는 몰라요. 요즘 교과서에 등장한 노래거든요. 마찬가지로 요즘 아이들은 '고향땅'을 모르죠. 7차 교과과정부터 교과서에서 빠졌어요. 선진국에서는 교과서 동요는 거의 100년 동안 바꾸지 않는다고 해요. 그만큼 세대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동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거지요. 요즘 아이들, 랩이나 가요는 입에 달고 다녀도 동요는 잘 모르는데 집에서 할머니 손자가 함께 동요 부르며 놀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 선생은 요즘 동요교실 참가자들에게 2부합창을 가르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10월에는 은평구 관내 실버동요대회가 열릴 예정이거든요. 또 인근 초등학교, 어린이집과 연계해 합동 동요교실을 만들 것도 구상중입니다.
"99년 정년 퇴임하면서 내 역할은 다했다 싶었는데 역시 가만 있을 팔자는 못되나 봐요. 힘 닿는 데까지 동요보급을 위해 살면서 평생 동요를 지극히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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