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매트 위의 기적’이라 부른다.시드니올림픽(2000)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슈퍼헤비급(130㎏) 결승전. 가장 위대한 레슬러로 불리는 ‘시베리아 불곰’ 알렉산드로 카렐린(러시아)가 버티고 있었다. 올림픽 3연패, 세계선수권 9회 우승 등 무려 13년 동안 매트의 무법자로 군림한 ‘불곰’의 승리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무명의 미국선수 룰런 가드너(33)였다. 1995, 97, 2000년 미국 레슬링 챔피언이었지만 세계 고수들이 용쟁호투를 벌이는 국제대회에는 고작 두 번째 참가했다. 게다가 97세계선수권에서 가드너는 카렐린의 주무기인 뒤로 뒤집기에 걸려 5-0으로 완패한 바 있다.
하지만 무상한 세월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렸다. 가드너는 올림픽 4연패를 꿈꾸는 카렐린을 연장 접전 끝에 1-0으로 꺾고 새로운 주인공이 됐다. 미국은 환희에, 러시아는 슬픔에 잠겼다. 가드너는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불곰이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 나의 승리는 고된 훈련, 흔들리지 않는 정신, 신에 대한 믿음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장의 영웅’에서 일약 미국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다.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의 시골마을에서 9남매 중 막둥이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꼴을 베고, 짚을 쌓고, 소젖을 짜는 부모를 돕던 ‘농군의 자식’이 성공신화를 일궜기 때문이다.
그가 매트 위에 명함을 내민 건 89년 와이오밍주 고교 레슬링대회 헤비급에서 우승하면서부터. 미식축구를 그만두고 시작한 레슬링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부모는 그에게 농사대신 운동을 권했다.
부모의 지원과 자신의 투지가 결합하자 가드너는 승승장구하며 수많은 대회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결국 시드니에서 ‘13년 불패의 전설’ 카렐린을 무찔러 은퇴 시키고, 2001세계선수권 우승까지 하며 새로운 강자로 등극했다.
호사다마인 탓인지 잘 나가던 가드너에게 불의의 사고가 터졌다. 2002년 겨울 취미인 스노모빌을 타다 강물에 빠졌고 12시간 후 구조됐을 때 그의 체온은 31도, 온몸이 동상에 걸렸다.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 하나를 버리고 회생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균형감각이 필수인 레슬러에게 발가락 절단은 선수생명의 끝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는 “내 발을 노리는 상대는 나의 눈과 팔을 거쳐야 한다”며 재활의지를 불태웠고, 당당히 아테네에 입성해 올림픽 2연패를 노린다.
“내가 돌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자 신의 은총이다. 한 순간도 꿈을 포기한 적이 없다. 결코.” 4년 전 ‘이변의 드라마’를 기억하는 세계는 이번 아테네에서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룰런 가드너 프로필
-1971년8월16일 미국 와이오밍주 애프톤 출생
-낙농업 부모 슬하 6남 3녀 중 막내
-키 188㎝ 몸무게 129㎏
-취미 스노모빌, 모터사이클, 요트
-고교시설 미식축구 선수 활동
-네브라스카대 체육교육학과 졸업(1996)
-1989 와이오밍주 고교 레슬링대회 헤비급 챔피언
-1995, 97, 2000 미국 챔피언
-2000 시드니올림픽 그레코로만형 슈퍼 헤비급(130㎏) 금메달
-2001 세계선수권 우승
-2002 스노모빌 사고로 오른쪽 가운데 발가락 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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