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올림픽(1972)에 출전한 북한은 세계를 두 번 놀라게 했다. 남자사격 소구경 복사에서 600점 만점에 599점을 쏴 북한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리호준. 그의 신들린 사격에 놀란 세계는 “적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쏘았다”는 그의 우승소감에 다시 한번 놀랐다.‘DPRK(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란 국명으로 100여명이 출전해 금1, 은1, 동3개로 종합22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북한은 한국이 런던대회(48)에 첫 출전한 24년 후인 이 대회에 처녀 출전했다.
북한은 64년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려 했으나 개막식 직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의해 입장이 거부당했으며, 멕시코시티대회(68)에는 스스로 참가를 거부했다.
북한은 몬트리올올림픽(76)에서도 복싱 페더급의 구영조가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금1, 은1개로 23위를 차지해,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며 금1, 은1, 동4개로 19위에 올랐다. 북한의 첫 여자 금메달리스트는 96애틀랜타의 계순희(유도)로 한국보다 12년이 늦었다. 한국은 84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서향순(여자양궁 개인전)이 첫 금메달을 따냈다.
동구권만 참가한 모스크바올림픽(80)에서 은2, 동2에 그쳤던 북한은 동구권과 함께 불참한 로스엔젤레스(84)와 공동개최를 빌미로 역시 불참한 서울올림픽(88)을 거치며 ‘체육의 침체기’를 맞았다.
바르셀로나(92)는 북한 체육의 ‘제2전성기’였다. 북한은 레슬링 자유형의 김일과 리학선, 복싱의 최철수, 체조의 배길수 등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일은 애틀랜타(96)에서도 우승, 한민족으로서 첫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올림픽은 남북간 대결을 넘어 경쟁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1세기의 길목에 열린 시드니대회(2000)에서 남북한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 입장해 전세계를 감동시켰다. 남북한은 아테네에서도 손에 손을 맞잡고 동시 입장한다. 남한은 금메달 13개로 ‘톱10’진입을, 북한은 금메달 4개 이상으로 10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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