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융산업은 주식·채권시장 등 자본시장이 아닌 은행 중심으로 다시 재편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 은행과 기업간 장기 협력관계가 복원돼야 한다는 주장이다.삼성경제연구소는 30일 '한국의 금융현실과 금융효율화를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 "한국의 금융구조가 단기간에 자본시장 중심으로 이행하는 것은 무리이며, 장기적으로도 미지수"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은 자본시장 중심으로 금융을 재편하려는 정부 방침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보고서는 그 근거로 우선 자본시장이 금융의 주도적 역할을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본시장 주도의 시장 중심형 금융구조가 형성된 미국 영국 등에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100%가 넘지만 한국은 54%에 불과하다.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다는 얘기다. 또 우량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가 양극화가 두드러져, 주식시장의 역할이 제한적이고, 정보유통 등 자본시장 인프라도 취약하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나아가 미국식 시장 지향형 금융구조가 일본식 관계 지향형 금융구조보다 우월하다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이 자동차, 가전 등을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하던 1980년대에는 미국식 금융의 단기 업적주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은행이 장기적 안목에서 기업을 지원하는 체제가 우월했다. 반면 90년대 정보기술(IT) 산업이 성장을 주도할 때는 시장에 의해 기업이 평가되는 미국식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절대적 기준에서 효율적인 금융구조는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일본식 금융구조를 근간으로 하되, 미국식의 장점을 접목한 '시장 중심적 관계지향형 구조'가 한국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민간 금융기관에 대한 직접 간섭은 배제하되, 은행과 기업간 장기 협력관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은행권 부실이 상당 부분 해소된 만큼, 관계 지향형 금융구조의 약점인 '구조조정의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며 "은행과 기업간에도 이제 시장 원칙이 중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경제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견 대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은행 중심의 금융구조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우량 기업만 선호해 비우량 대기업군에 대해서는 자금조달은 물론이고, 투자자들의 견제도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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