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가족 동반 체육대회를 열었다. 팀을 나눈 후 팀 이름과 응원가를 정하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 닥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무엇일까.2004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10명 중 9명은 ‘올챙이송’을 꼽을 것이다. MBC의 간판 오락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 ‘브레인 서바이버’를 통해 알려져 ‘국민 동요’로 자리잡은 노래 한 곡이 어른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잊혀졌던 동요의 즐거움을 되살리고 있다.
인터넷 노래 반주기 ‘질러넷’ 집계에 따르면 이 노래는 4월에야 노래방에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약 4만5,000번이 불려져 상반기 비가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화장품 광고에 등장한 섹시한 몸매의 전지현과 ‘뉴 논스톱4’에 출연한 신세대 배우 한예슬, 곧 개봉할 영화 ‘신부수업’에 유치원 선생님으로 나온 하지원까지, 저마다 율동과 함께 ‘올챙이송’을 열창한다.
‘올챙이와 개구리’가 원제인 이 노래는 사실 1993년 탄생, 유치원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인기 동요’였다. 미국에 유학 중이라 얼마 전까지 노래의 유명세를 몰랐다는 이 노래의 작곡가 윤현진(38)씨를 만났다.
유치원 원장 어머니 청으로 동요 제작
“어린 시절 부모님이 ‘반달’, ‘아빠하고 나하고’ 같은 동요를 불러주시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어느새 아이와 어른이 공유할 수 있는 동요가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세대를 초월해 모두가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생겼다는 점에서 ‘올챙이송’의 인기가 무척 반갑습니다.”
미국 콜럼비아대에서 유아음악교육을 공부하다 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윤씨가 ‘올챙이송’의 선풍적 인기를 안 것은 불과 1~2달 전. 미국에서 한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둘러보던 중 ‘올챙이송’이 인기검색어로 1위로 등록된 것을 본 후였다.
“93년 유치원 교사연수회를 통해 선생님들에게 가르쳤던 노래였어요. 유치원에서는 이미 10년 동안 불려지며 꽤 알려진 곡이었는데 운 좋게도 인기 프로그램에 노래와 율동이 반복적으로 방영되면서 어른들에게까지 급격히 퍼진 것 같아요.”
윤씨의 대학 시절 전공은 서반아어, 졸업 후 첫 직장도 음악과는 상관 없는 은행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유치원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주문을 받아 하나 둘 동요를 만든 것이 음악 활동의 시작이었다. 한 곡 만들 때마다 약 5만원 정도의 ‘짭짤한’ 용돈도 챙겼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윤씨가 만든 동요는 약 100여 곡에 음반도 ‘올챙이와 개구리’를 포함해 세 장이나 된다.
"동요 없는 사회는 삭막합니다"
“대학 시절 코미디 작가가 돼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게 제 꿈이었어요. 작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다른 쪽으로 많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띄게 했으니 어느 정도 꿈은 이룬 셈인 것 같습니다. 동요를 부르면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이 되니깐요.”
음반이 잘 팔리고 아이들 사이에 윤씨가 만든 곡이 많이 불리자 슬슬 동요 작곡의 재미가 느껴졌다.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한 후 2002년에는 본격적으로 유아 음악교육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컬럼비아대로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목표로 공부 중이다.
올해는 윤극영 선생의 ‘반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창작동요 시대가 막을 올린 지 꼭 80년 되는 해다. ‘반달’이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의 아릿한 슬픔을 그려내며 온 국민에게 힘을 줬던 것처럼 동요는 어떤 장르의 노래보다 어른의 마음을 위로한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들어 어른들의 세상에서 동요는 소리없이 잊혀져 갔다.
“한창 열심히 일하며 ‘잘사는 맛’을 알아가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어른들은 그 때부터 동요를 부르지 않기 시작했지요. 초등학교 앞에 ‘마약 거래 금지 구역’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는 삭막한 미국 사회를 보며 동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에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쉬운 노래’들은 많아도 막상 ‘동요’라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거든요.”
"제2, 3의 '올챙이송' 나왔으면"
윤씨는 ‘올챙이송’이 이토록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기획에 경제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마음 속에 조금씩 피어 올랐던 동요에 대한 향수가 합쳐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동요의 주 소비 층이었던 것과 달리 윤씨의 ‘올챙이송’에 열광하며 ‘팬레터’를 보내는 이들 중 아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녀는 ‘올챙이송’의 인기를 원동력으로 삼아 ‘가족동요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가훈과 같이 가족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가요(家謠)’로 정해두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윤씨가 이 같은 운동을 펼치기로 한 데는 얼마 전 딸아이와 겪은 경험이 큰 몫을 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와의 관계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그녀는 아이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아무 설명 없이 어린 시절 함께 부르던 ‘아기다람쥐 또미’를 부러 주었다. 반항심이 싹트던 아이는 조용히 듣다가 중간에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고 그날부터 둘의 관계는 거짓말처럼 다시 가까워졌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동요는 세대간의 간격을 좁혀주고 지친 마음을 달래줍니다. 동요가 많이 불리는 사회의 진정한 혜택은 어른들에게 돌아가요. ‘올챙이송’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제2, 제3의 ‘히트 동요’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글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올챙이송 '인기 숨은 주역' 이경아 한솔교육 본부장
10년 전 만들어진 ‘올챙이송’이 뒤늦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데는 방송의 힘이 컸다. 쉽고 재미있는 멜로디에 귀여운 남녀 캐릭터가 움직이는 깜찍한 율동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와 어우러져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올챙이송’이 방송을 타게 한 주인공은 한솔GEN 디지털 사업본부 이경아(38) 본부장. 지난해 12월, 매주 출제해야 하는 ‘브레인 서바이버’ 문제에 부담을 느낀 MBC 측에서 인터넷을 뒤지다 한솔GEN에서 운영하는 유아교육 전문 사이트 ‘재미나라(www.jaeminara.co.kr)’를 발견했고 그 중에서도 ‘올챙이송’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브레인 서바이버 ‘올챙이송’에 등장하는 남녀 어린이 캐릭터 이름은 ‘재재’와 ‘미미’로 사이트 이름에서 따왔다. ‘니모를 찾아서’, ‘슈렉’ 등 애니메이션에 주로 사용되는 ‘모션 캡쳐’ 기술을 사용해 만든 애니메이션을 방송에서 그대로 사용한다.
“이 노래와 율동은 원래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던 아이들을 위해 ‘몸을 풀라고’ 만든 것이었어요. 저희가 제작한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니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올챙이송’의 반응이 예상외로 선풍적이어서 한솔GEN는 ‘브레인 서바이버’에 더 많은 문제를 제공하게 됐다. 방송 중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문제는 거의 이곳에서 만든다. ‘떡 먹는 용만이’나 ‘장애물 넘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부분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유아용 게임의 캐릭터만 바꾼 것으로 MBC 측에서 받는 비용은 일체 없다.
“‘올챙이송’의 인기를 힘입어 인형과 비디오, 아동용 신발 같은 캐릭터 상품도 덩달아 사랑을 받고 있어요.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에 버금가는 ‘히트 동요’를 기획하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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