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영화 ‘반 헬싱’은 그동안 숱한 드라큘라 소재 영화에서 조역이었던 반 헬싱을 주인공으로 격상시키고 그의 상대로 드라큘라를 비롯해 늑대인간과 프랑켄슈타인을 등장시키는 ‘괴물종합선물세트’같은 재미를 내건다.당연히 참조해야 할 몇몇 원전들도 짜깁기 된다. 브람 스토커 원작의 ‘드라큐라’와 ‘뱀파이어의 전설’은 물론이고 1930년대 할리우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단골 메뉴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등의 영화들이 새로 불려와 일렬종대로 선다. 여러 원전에서 취한 괴물들이 떼로 몰려나오니 그럼 재미도 세 배로 늘었을까?
그건 관객이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다르다.
‘미이라’ 시리즈로 유명한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원전들로부터 캐릭터를 빌어온 대신 드라마는 다 제거해버리고 현대적인 영웅으로 거듭난 반 헬싱과 친숙한 괴물들의 대결 액션 드라마로 골조를 세운다. 반 헬싱과 짝을 이뤄 싸우는 여주인공 영웅까지 가세하면 이건 실패할 수 없는 기획처럼 보였을 것이다.
액션과 스펙터클한 면면에서 ‘반 헬싱’은 에어컨 대용 구경거리로 손색이 없다.
거대한 날개를 달고 공중을 나는 흡혈귀의 모습도 현기증을 불러 일으키는데 흡혈귀 자식들이 고치 형태로 매달려 있는 장면 따위는 현대 영화가 애니메이션인지, 실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무한대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계산된 이 영화는 한 단계 전투를 마치면 업그레이드 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 내러티브를 적절히 응용하면서 뇌를 얼얼하게 만드는 볼거리를 꾸민다.
무서운 괴물들이 만화 주인공들처럼 보인다는 건 이 매끈한 블록버스터에 깊이가 없다는 증거이지만 그건 만든 이도, 보는 이도 괘념치 않는 이 영화의 한계일 것이다.
감동을 원한다면 이란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권한다. 이란과 이라크 접경 지대를 무대로 이 영화는 취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만큼 추운 날씨에 말과 노새에게 술을 먹인 후 국경을 넘나들며 밀수로 푼돈을 벌어먹고 사는 쿠르드족 사람들의 삶을 담는다. 문제는 그들 중에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열 두 살 소년 주인공이 끼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는 관객의 심금을 아프게 울린다. 어떤 감동도, 카타르시스도 꾀하지 않은 채 결론을 유보하고 관찰한 영화 속 아이들의 모습은 타인을 이해하고 동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고 동시에 어려운 일인지를 알려준다.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이 영화의 결말은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것이지만 그걸 보는 관객 입장에선 이런 현실에 아무 것도 보탤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겨준다. 바로 그런 심정으로 타인에 대한 앎의 욕구와 공감이 생겨나는 것을 이 가난한 이란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
김유미와 임은경이 주연을 맡은 ‘인형사’는 ‘귀신 들린 집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이야기’라는 공포 영화의 전형을 따르고 있으나 귀신처럼 보였던 존재가 사실은 다른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는 대단원의 반전으로 관객과 기싸움을 한다.
거기까지 볼 무렵 공포와 슬픔이 버무려진 등장 인물들의 감정이 스크린에서 건져올려지며 납득할 만한 선에서 결말을 내린다. 대중영화로선 나무랄 데 없는 시나리오였으나 영화로 옮겨졌을 때 신인감독의 손맛이 덜 느껴지는 아쉬움은 있다.
김영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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