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 지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미술관이 벌이는 공방전은 무더위로 인한 짜증을 한층 더해준다. 정부기관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그 운영성과에 책임을 지게 한다는 이 제도의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런데도 추진방식과 반대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양쪽의 주장은 '반쪽 진실'에 불과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일방적으로 선정한 정부의 추진은 졸렬하고, 무턱대고 반대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대응도 속이 보인다.정부 추진과정 졸속
먼저 이 제도 도입을 결정한 행정자치부는 욕을 먹어도 싸다. 하고 많은 기관 중 하필이면 국립현대미술관을 선정한 기준과 근거가 뭔지, 왜 행자부 산하기관은 하나도 도입하지 않는지,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미국처럼 특별법인화하는 것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혹시 공무원들의 낙하산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중요한 사안을 해당기관은 물론 문화계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은 채 발표, 오해를 키우고 반발을 불렀다는 것이다. 문화관광부가 27일 뒤늦게 설명자료를 내고, 반대성명을 발표한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 미술계 4개 단체장을 불러 설명회를 갖는 등 부산을 떨고 있지만 미덥지 못하다. 이 제도 도입이 무산된다면 결국 수순 잘못이 크다.
'책임운영기관 반대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투쟁하는 미술관의 대응은 더욱 볼썽 사납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기관을 수익사업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온다' '문화예술을 수치화, 계량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항변하지만 논리와 명분이 너무 약하다. 평가항목을 보면 전시작품수준(35%), 서비스 수준향상(20%), 조직관리·업무처리방식(30%)이고 재정자립도 부분은 15%(전시장 활용 등을 제외하면 4%)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예산이 줄지도 않는다. 2000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된 국립극장의 일하는 자세가 달라졌고, 관람객이 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공공성 확보나 소외계층, 지방으로의 문화확대 정책약화' 등을 운운하지만, 미술관의 구태의연한 관료적 행태와 높은 문턱, 서비스 수준을 생각하면 반성부터 해야 한다. 실제로 책임운영기관 도입 반대성명을 냈던 4개 단체장이 문화부의 설명을 듣고 수긍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억지
국민의 입장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책임 운영'을 하든, '무책임 운영'을 하든 알 바 아니다. 다만 좋은 전시를 자주, 값싸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기분 좋게 감상하고 싶을 뿐이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내세워 밤낮 신세타령, 환경타령만 하면서 바뀌지 않으려고 하는 곳이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이라니. 부끄럽지 않은가?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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