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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우리당이 무섭다

입력
2004.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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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유인태씨 같은 사람들이 유신에 항거해서 감옥살이 할 때 판사 한 번 해보려고 유신헌법으로 고시공부 한 것이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고백이다." 정체성 논란의 와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심경을 그의 측근인 윤태영 청와대 부속실장이 받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글의 일부다.30년 전으로 한번 되돌아 가본다. 민청학련을 주도한 이철, 유인태 등이 법정에서 오랏줄에 묶여 긴급조치위반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당시 분위기로 그들은 영락없이 죽은 목숨과 같았다. 이즈음 청년 노무현은 사법시험에 인생을 걸고 책과 씨름하고 있었을 터이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의 큰 딸 박근혜는 '대통령 영애'라는 공식호칭 아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 세대 전 너무도 다른 길을 걸었던 이들 젊은이들이 지금 50대가 되어 우리 정치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박근혜 대표의 출현으로 우리 정치가 갑자기 유신논쟁에 휘말려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국가정체성 질문을 받았을 때 바로 이런 과거의 회상이 '부끄러운 고백'의 실마리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가장 비민주적 권력이 횡행하던 유신시대에 이루어진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비판함으로써 박근혜 대표의 정체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역공인 셈이다.

박근혜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등장한 이후 상생을 외치던 여야는 상극의 길을 걷고 있다. 마치 대통령선거가 임박한 시점의 정치권 분위기와 같다. 16대 국회보다 더 지독한 정쟁의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 승자의 위치에 선 노무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과거 민주화투쟁의 유산에 짓눌려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민주화 기여도가 권력배분의 지표가 된다면 박근혜대표는 국회의원도 되지 말아야 하는 일이고, 노대통령과 유인태 의원은 정치적 위치가 바뀌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만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일 아닌가. 바로 그런 이유에서 권력은 과거를 바로잡는 데 노력해야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 더 비중있게 쓰여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 우리당은 겸손한 승자의 위치에서 국가운영의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규모에서 결코 허름한 국가가 아니다.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으면서 전략적으로 복잡한 대응을 해 나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국내 경기는 위축되고 국제경쟁력은 위협 받고 있다. 국가 경제정책의 총수인 재경장관과 한은 총재가 우리경제의 현상을 '고칠 수 없는 우울증'이라든가 '조로증'이라는 말로 비관적 진단을 내리고 있다. 당장은 민생경제가 걱정이고,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이 문제다. 아쉽게도 지금 집권세력은 이런 국가적 현안에 대해 뚜렷한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마음은 마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의 심정과 비슷하다. 필요한 수술을 받아 빨리 회복하고 싶은데, 수술대를 둘러싼 의사들의 표정을 보니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의사들이 칼을 들고 저마다 진단한 환부를 도려내겠다고 떼지어 덤벼드는 형국이다. 병을 고치기보다 사람 잡을 것같아 환자는 겁을 먹고 있다. 지금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개혁조급증이 국민의 눈에 이렇게 비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집권세력의 정책목표가 기존의 가치와 체계를 철저히 붕괴시키는 것이라면 이대로 나가도 될 것이다. 그러나 민주체제와 더불어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려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조율이 잘된 팀이 되어 수술칼을 잡아야 할 것이다. 옛날 로마제국의 초석을 놓았던 카이사르는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세계만을 보려 한다"고 말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남이 보는 세계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옳은 목표를 설정하되 방법은 현명해야 한다.

/김수종 주필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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