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한국에 부임한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다음달 5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허바드 대사가 한국에 도착한 날 9·11테러가 발생했고 그의 임기 3년여 동안 2차 북핵위기,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사망사건, 주한미군 감축 등 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는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생활의 소회와 한미관계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허바드 대사는 우선 "9·11 이후 미국인의 세계관과 동맹에 대한 생각 등이 많이 변했지만 한국과의 동맹은 더 굳건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북한 핵 위협을 더 적게 느끼지만 미국인들은 핵프로그램을 더 우려한다"며 "우리는 때로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이해관계는 유사하고 큰 틀에서 보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허바드 대사는 북한과 관련, "9·11 이후 미국민은 대량살상무기(WMD)와 테러리즘을 가장 큰 도전으로 느끼고 있고 혹시나 테러리스트 손에 대량살상무기가 들어갈까 두려워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북한의 핵위협을 그 전보다 더 크게 느끼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생활 중 그를 가장 어렵게 했던 것은 여중생 사망사건이었다. "정말 비극적인 사고였다. 마음이 아팠고 가장 힘들었다.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우리의 죄송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한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됐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이야기 도중 눈가가 붉어지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허바드 대사는 또 "1987년 이전에는 한국에 사실상 민주주의가 없었지만 민주화 이후 많은 정치적 변화과정에서 한국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발휘했다"며 "탄핵절차 당시에도 헌법을 수호하려는 모습과 (선거를 통한) 세대교체가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허바드 대사는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서는 "1995년 한 강연에서 21세기에는 국보법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2001년에도 같은 이야기를 해 화제가 됐다"며 "그래서 이제는 국보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허바드 대사는 올해 60세로 1965년 미 국무부에 들어가 일본과장과 필리핀대사,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을 지낸 아시아 전문가이자 한국통이다. 그는 "사찰 방문과 한국 전통미술이 기억에 남는데 마음 속에 한국을 담아간다"며 "일단 미국에 돌아가면 2개월 동안 휴가를 보낸 뒤 민간분야에서 일할 예정인데 한국관련 일을 맡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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