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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32>조경희 한국수필가協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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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나]<32>조경희 한국수필가協회장

입력
2004.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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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중학동 14번지는 한국일보가 탄생한 자리다. 나는 이곳에서 17년간 근무했다. 여기자로서는 최초로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7년의 세월을 지낸 친정 직장 한국일보는 잊을 수가 없다. 한국일보가 나를 잊어버린다 해도 나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내가 한국일보에 입사했을 때는 지금의 사옥이 아니고 삐그덕 소리가 나는 낡은 건물이었다. 거기에 고(故) 장기영 사주는 한국일보라는 깃발을 세웠다. 건물은 비록 낡았으나 그곳에서 제작해 내는 신문은 그 당시 다른 신문들을 누르게 되었다. 들어오는 사람 막지 않고 나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장 사주의 인사정책은 다른 어떤 직장과도 달리 자유 분방하였다.

기자들은 십분 자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장 사주는 중학동 14번지 바다에 떠있는 항공모함의 함장으로서 한마디로 말하면 멋진 돛대를 잡고 있었다. 흩어지는 사원을 항상 끌어 모으기 위해 화요회를 개최해서 본인이 직접 연사가 되어 기자들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연말 연시가 되면 13층 송현클럽에 잔뜩 차려서 실컷 먹게 하고 서울의 언론계 정계 경제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한국일보에 나타나서 서로 인사를 나누게 하는 만남의 광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문화예술을 사랑하던 사주는 한국화단 대가들의 전시장을 만들어 왕성한 창작의욕을 북돋아 주는 전시회를 개최하고 한국 고유의 전통놀이인 연날리기 대회를 열어 민속문화를 살리는 역할을 하였다. 어떠한 행사든지 한국일보의 라벨을 붙여 나갈 때는 크게 힘을 받았다.

창간 50주년을 기념해서 이번에 마련한 샤갈전은 한국일보의 전통을 살리는 획기적인 큰 전시회라 하겠다. 샤갈작품을 한 두 점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120여점을 한국의 남단 부산에까지 전시를 한다니 한국화단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중학동 14번지에 우뚝 서있는 한국일보 건물은 고(故) 김수근씨의 설계로 이뤄졌다.

초창기에 한국일보 건물은 보잘 것 없었으나 편집국에는 늘 사주가 아끼는 명문장의 기자들이 있었다. 편집국을 늘 지키고 있던 홍유선의 신선한 솜씨, 문장이 번뜩이는 지평선란은 사주가 직접 끌고 가던 지면이었다. 오종식 주필에 조풍연 선생, 신석초 시인의 글 향기를 맛볼 수 있었다. 사주는 얼굴을 다 그리고 난 뒤 눈을 그리듯 지면에 넘치는 산소의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좋은 문장을 찾아 지면을 빛나게 하였다.

이제 50주년을 맞아 지나간 추억담만 말할 때가 아니다. 50년 역사가 하루도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일찍이 이 세상을 떠난 장 사주의 불도저 정신을 본받아 앞으로 다가오는 새 날에 새 신문을 제작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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