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섭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최근 사법부 안팎의 '변화'를 우려하며 사의를 밝힌 이후에도 전국 법원은 의외로 조용한 모습이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이라는 지위가 갖는 상징성에 비추어 이런 반응은 예상 밖이다. 지난해 8월 대법관 인선파동 때 연판장이 돌고 사상 최초로 전국법관회의까지 열렸던 데에 비하면 싱거울 정도다.하지만 이런 고요의 이면에는 현재 법원이 안고 있는 깊은 고민이 깔려있다. 강 법원장 발언 후 만난 한 젊은 판사는 지금 법관들의 침묵을 "변화기 혼돈의 결과"라고 했다. 사안마다 가치판단이 엇갈려 전체는 물론, 개개인의 의사표현마저 힘들 정도라는 얘기다.
실제 40대의 김영란 부장판사가 대법관 후보로 제청 되자 대다수 부장급 판사들은 미래를 불안해 하고 있다. 이들은 강 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를 공개하는 추천방식을 비판하자 일제히 공감을 표했다. "20년 가까이 서열을 중시하는 시스템 속에서 묵묵히 일해왔는데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이냐"는 항변도 들린다. 하지만 반론도 많다. 지난해 밀실인사의 폐해를 지적했던 소장 판사들은 일부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고 후보 공개로 투명한 인사를 하자는 게 대의"라고 말한다.
'전향적' 판결에 대한 입장도 엇갈리긴 마찬가지다. 최근 예상을 뒤엎는 판결을 한 판사들은 일각에서 이를 "시민단체의 영향"이라고 하는 데 발끈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나 법리해석에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양심에 따라 고뇌 끝에 내린 판결을 섣불리 몰아붙이지 말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관례를 바꾸는 데 진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진통이 극단적 대립으로 가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사법부가 굳은 껍질을 벗고 시대에 맞는 옷을 입기를 바라고 있다.
/김용식 사회1부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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