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 새뮤얼 헌팅턴 지음형선호 옮김 / 김영사 발행ㆍ1만9,900원
미국은 흔히 용광로(melting pot)에 비유된다. 어떤 인종, 문화, 민족이건 미국 땅에 닿으면 동화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용광로를 이루는 용기(容器), 그것을 달구는 에너지와 촉매는 무엇일까.
또 그것들은 어떻게 작동하고 언제까지 유효할까.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원제 ‘Who are we?’)은 미국의 정체성을 이끌어낸 문화적ㆍ정신적 용광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원로 정치학자 헌팅턴(77) 하버드대 교수는 이 책에서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 대해 정색을 하고 질문을 던진 후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연구를 촉발시킨 동기는 당초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었던 용광로의 불길이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저자는 미국의 정체성을 구성한 요소와 형성과정부터 분석한다. 그는 17, 18세기 영국에서 건너온 개척자(이민자가 아님)들의 가치관, 제도, 문화가 미국발전의 바탕이 됐다고 단언했다.
특히 미국인에게 공통적인 사회적 에토스인 미국의 신조(American Creed), 앵글로ㆍ프로테스탄트 문화, 종교(기독교)가 상호 교직하면서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주의, 출판의 자유, 기회의 평등, 결사의 자유, 배심원 재판 등 종교에 뿌리를 둔 신조들은 서로를 묶어두는 요소였고, 남북전쟁(1861~65)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용광로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땔감 역할을 했다.
하지만 헌팅턴은 냉전이 끝난 후 60년대부터는 국가주의가 퇴조하면서 정체성이 흔들렸다고 파악하고 그 원인을 하나하나 추적한다. 미국이 갖는 외형, 실체, 정당성에 도전하는 강력한 세력은 바로 70년대부터 쏟아져 들어온 이민자들로 단정했다. 이민자들은 출신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중적인 충성심, 이중적인 국가성을 유지하며 미국사회와 신조에 동화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사회에서 백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히스패닉들은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상대적인 심리적 단절감을 느끼지 않고, 별도의 세력으로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정치인들도 표를 얻기 위해 그들의 문화를 인정해줌으로써 결국은 미국에서 앵글로 문화와 히스패닉 문화가 충돌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봤다.
결론적으로 헌팅턴은 미국의 국경을 한없이 개방하는 범세계주의나, 세상을 미국적 가치관에 맞게 바꾸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앵글로ㆍ개신교 문화로 다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서문에서 “미국의 단결과 강력함에 깊은 관심을 가진 학자로서 애국적ㆍ학문적 동기에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힌 헌팅턴은 미국의 주류계급(WASPㆍ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들의 시각과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 방대한 연구와 통계자료, 여론조사 등을 동원해 자신의 논점을 정교하게 펼쳤다. 하지만 자신의 표현처럼 ‘애국주의 동기’가 강하다 보니 ‘신문명 충돌’부분에서는 편견과 논리적 비약도 눈에 띈다. 때문에 ‘학술적 고찰이라기 보다는 선천론자의 광분’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은 뻔뻔스러운 인종차별’등의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세심한 통찰력, 정확한 논지전개 등은 높이 살 만하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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