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은 요원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가 있다.이번 '북한 이탈 주민 대규모 입국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 이야기하듯이 '대량 탈북'도 아니고 '사태'도 아니다. 제3국에 체류하고 있던 400명이 넘는 북한 출신 주민들이 특별한 경로로 해서 들어온 것뿐이다. 유엔 추산으로 10만여 명에 이르는 제3국 거주 북한 이탈 주민은 이미 존재하여 왔고, 이들 가운데 남한으로 오길 바라는 사람들은 소규모로 때로는 단독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입국하여 왔다. 다만 이번의 경우는 해당 국가의 특수한 상황으로 누적되어 온 북한 이탈 주민의 수가 임계점에 도달하여 특별한 입국통로가 필요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경우를 대량 탈북 사태로 규정하면서 북한 체제의 문제와 결합시키는 시각은 정치적 해석에 불과하다.
사실 제3국에 있는 북한 이탈 주민의 열악한 반인권적 상황은 그 동안 지속되어 왔다. 아동을 포함한 북한 주민들은 착취의 대상이 되고 여성들은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어 왔으며, 체포와 강제송환의 위협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그들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조차 이들의 문제를 정말로 '인도적'인 차원에서 생각하기보다는 정치적 공방의 대상으로 삼거나 경제적 이득의 수단으로 삼거나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이름을 빛내기 위한 통로로 삼았을 뿐이다. 정부의 경우도 어쩔 수 없이 떠맡은 골치 아픈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였다.
수백 명이 전세기로 일거에 입국하였다는 사실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불법체류자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문제는 남한으로 오기 위해 수천㎞를 수개월에 걸쳐 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이다.
그렇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어느 나라건 불법체류나 난민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당사국들에 대해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제법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이들을 위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식적으로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해 1,000여 명의 북한 이탈 주민을 받아들이는 데도 정부나 사회가 허덕이는 상황에서 10만 명은커녕 그 10분의 1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정확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민족이니 통일을 지향하니 하는 식의 말들은 솔직히 수사에 불과하다.
출발은 이들의 상황을 진정으로 인간적이고 인도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있어야 한다. 더욱이 이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원죄와 같은 분단의 희생자라고 한다면 남북관계나 국내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이들을 도울 방법이 나올 수 있고, 냉정한 국제정치적 상황에서도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비록 '조용한 외교'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고, 시민사회의 개개인이나 단체의 기여도 진정성을 띨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입국한 470여 명이 아니라 5,000여 명에 '불과'한 국내 입국 북한 이탈 주민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동안 정치적 이해의 수단에 머물렀던, 그래서 회피하여 왔던 북한 이탈 주민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들을 위해서 지불하는 국가예산이나 사회적 비용을 포함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부와 시민사회는 어떻게 일을 나누어야 할지를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이우영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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