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하루우라라시게마츠 키요시 지음/최영혁 옮김
청조사 발행ㆍ7,800원
지난해 12월 14일 100번째 경주에서 달리고 있는 하루우라라. 고양이 키티 캐릭터가 그려진 귀여운 복면은 하루우라라의 상징이다.
헤, 쑥스럽군요. 만날 꼴찌만 하는데 이렇게 분에 넘치는 관심을 가져 주시니. 제 이름은 하루우라라. 조련사 무네이시 다이가 꼭 성공하지 않더라도 꿋꿋하게 살아가라고 NHK 연속극 제목을 따서 붙여준 이름이죠. 지금까지 뭐 제대로 꽃펴본 적은 없지만 이름만은 그래도 ‘화창한 봄날’이랍니다.
저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사라브렛드종 암말입니다. 올해로 만 8살이고요, 지금은 시코쿠 남부 고치시 경마장에서 뛰고 있답니다. 경주마는 네살이 전성기라고 하니, 저는 은퇴해도 될 나이입니다.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왜 멀리 고치까지 왔냐고요? 아무도 사가려는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고치경마장은 전성기를 지난 말, 중앙경마에서 은퇴한 말, 이를테면 낙오된 말들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무네이시의 말을 빌리면 저는 몸집이 작은데다 발목이 가늘어서 나이를 먹어도 별로 크지 않고, 폐활량이 작아 장거리 달리기에서 체력이 떨어지는 말입니다. 실제로 보통 말의 몸무게가 500㎏인데 저는 400㎏밖에 안 되는 약골입니다.
1998년 11월 데뷔전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해야지’하고 꽤 긴장도 했는데, 결과는 5등. 꼴찌입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운이 쏙 빠지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갑자기 발굽이 나빠져 딱 한 번 못 나간 적을 빼면 지금까지 경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성적이 궁금하시죠? 가장 최근 경주가 11일에 있었습니다. 112번째 경주지요. 저는 이 경주까지 그야말로 깨끗하게, 내리, 꾸준하게 졌습니다.
뭐, 부끄럽기는 합니다만 후회도 유감도 없습니다.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무네이시도 “지금까지 보아왔던 경주마 중에서 가장 약한 녀석이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말”이라고 했나 봅니다.
정말 쑥스러운 건 만날 지기만 하는 저를 두고 온 일본이 떠들썩한 겁니다. ‘언젠가는 이기고 말 테다’라는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는 제가 희망을 준다나요?
지난해 12월 100번째 경주에 5,074명이라는 고치경마장 사상 최대 관객이 저를 보러 몰려왔습니다. 사진집, 캐릭터 인형, 관련 음반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곧 제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도 만들어집니다. 올해 1월에는 고치시 관광협회에서 주는 공로 표창장도 받았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회의 중에 제 경주 결과를 보고 받고 “또 졌느냐”고 탄식했다더군요.
간병인으로 오래 일하다 암 투병 중인 오가사와라 후미코는 집 현관에 제 사진을 걸어두었답니다.
“우라라짱, 병이 나았어요”라고 할 때까지 드나들 때마다 제게 인사합니다. 사회복지사 구보카와 고이치는 “희망을 준다는 것은 웬만한 복지정책보다 어쩌면 더 소중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 마리의 말이 이것을 해내고 있다니 대단하다”고 합니다.
아직 답장을 못해주고 있지만 제 앞으로 온 편지도 수백 통입니다. 명예퇴직한 한 여성은 ‘나 자신을 몇 번이나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 하루우라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가겠습니다’고 썼습니다. 또 어느 학교 선생님은 ‘나는 학생들을 성적순으로만 평가해 왔습니다. 그러나, 져도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가지고 ‘달려라! 하루우라라’라는 책을 쓴 시게마츠 키요시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해피 엔드는 행복한 ‘결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일은 행복하게 될 수도 있는 ‘희망’, 그것을 나는 해피 엔드라고 부른다. 이제 승패는 상관 없다. 하루우라라의 이야기는 어쨌든 해피 엔드가 되는 것이다.’
저 말고도 연전연패를 거듭하는 말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고 오늘도 기운차게 게이트를 차고 나가는 그 꼴찌들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하루우라라에 온 편지들
하루우라라에겐 지금까지 답장을 기대하지 않는 수백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달려라! 하루우라라'에는 그 중 두 통이 소개돼 있다.
'양친 모두 청각장애자였습니다. 나 자신도 초등학교 시절 신장병을 앓아 학업이 늦어졌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오랜 간병 끝에 1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당해 여러 차례 다른 직장을 찾아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나 자신을 몇번이나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 하루우라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가겠습니다.' (명퇴로 실의에 빠졌던 어느 여성)
'이기는 데만 신경을 쓰고 살아온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하루우라라에게서 커다란 힘을 얻었습니다. 인생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지더라도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나는 학생들을 성적순으로만 평가해 왔습니다. 그러나, 져도 빛이 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제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도 눈을 돌리겠습니다. 백 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점과 점수가 아닌 생활지도 등에도 힘을 쏟을 겁니다.'(교육관이 변한 어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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