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기록적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는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신데렐라 스토리와 PPL(Product Placementㆍ 드라마나 영화 속에 상품을 노출시켜 광고효과를 얻는 것)의 위력을 동시에 확인시켜 준 드라마다. 수천만원~수억원의 제작비를 지원받은 대가로 드라마 속 주인공은 수시로 차나 휴대폰을 바꾼다.이 때문에 드라마 보기가 짜증난다는 사람도 있지만 비슷한 제품이라도 찾아 사려는 이들 덕에 매출이 늘기도 한다. 과연 협찬사의 입장에서 ‘파리의 연인’ PPL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대부분 협찬사들이 “PPL 효과에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직접적인 매출증대 효과는 즉각 구매가 가능한 의류, 소품, 휴대폰 등에 집중됐다. 고가품 협찬사는 이미지 제고라는 무형의 효과에 만족하고 있다.
GM대우-매출 대신 이미지를 얻다
‘파리의 연인’처럼 주인공이 타는 자동차가 매회 바뀐 ‘우여곡절’의 드라마도 드물다. 극중 박신양(한기주 역)은 ‘GD자동차’의 사장이다. 협찬사인 GM대우차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실제로 GM대우의 매그너스(1,400만~2,300만원)와 라세티, 마티즈, 스테이츠맨(내년 수입 판매 예정) 등이 드라마에 등장했다.
사실 GM대우가 들인 비용과 얻은 이익을 직접 돈으로 비교하면 매출 효과는 미미하다. 극심한 자동차 내수 부진으로 시장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 다만 GM대우측은 회사와 차에 대한 이미지와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무형의 효과로 위안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입차의 노출 빈도도 높았다. 박신양이 파리에서 김정은(강태영 역)을 데려다 줄 때 탄 차는 9,620만원자리 캐딜락 드빌이다. 파리 로케에서 메르세데스 벤츠의 컨버터블 뉴SLK(6,990만원), 롤스로이스 팬텀 모델(6억5,000만원)도 노출됐다.
이동건(윤수혁 역)은 BMW 스포츠액티비티차량(SAV)인 X5(1억1,020만원), 박신양을 두고 김정은과 경쟁하는 오주은(문윤아 역)은 BMW 330i(6,760만원), 전처 역할의 김서형(백승경 역)은 BMW의 525i(7,440만원)를 타는 등 화려한 차들이 줄줄이 나왔다.
이처럼 차가 자주 바뀐 것은 협찬금액 문제로 드라마 제작사와 협찬사 사이에 불협화음이 계속되며 우여곡절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협찬금액은 3억원으로 알려졌는데 GM대우측은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CGV-프리미엄 상영관에 시선 집중
복합영화관 CGV는 전처 역할의 김서형의 직장으로 GM대우만큼 노출이 많다. CGV측이 지원한 제작비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평소 광고비를 전혀 쓰지 않는 것에 비하면 꽤 큰 금액”이라고 관계자는 말한다.
CGV측은 이번 드라마 PPL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박신양과 김서형이 주로 만난 CGV상암의 골드 클래스는 드라마 시작 전보다 대관 문의가 2배나 늘었고 점유율이 20%정도 올랐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억대의 제작비 지원이 이뤄진다고 보았을 때 티켓 가격 2만5,000~3만원, 좌석수 30석에 불과한 골드 클래스의 점유율이 20% 상승했다는 것은 미미한 수익창출 효과다.
그러나 CGV 홍보실 김민지씨는 “애초부터 골드 클래스는 고수익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프리미엄 상영관을 보유함으로써 기업 이미지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드라마에서 와인을 서비스하는 등 실제 서비스 내용이 노출돼 시청자들에게 프리미엄 상영관이 크게 어필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팬택앤큐리텔-디지털폰 판매 2배로 껑충
김정은이 이동건으로부터 선물받은 휴대폰을 돌려주고 다시 박신양에게서 선물받은 이유? 물론 팬택앤큐리텔의 제작비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휴대폰으로 채팅을 즐기고, 캠코더폰(PG-K600V)의 성능에 감탄까지 해가며 가장 효과적인 상품 광고를 했다.
팬택앤큐리텔측은 “드라마 시작 전 하루 400~600대 정도 판매되던 디카폰이 최근 하루 1,000대씩 팔리고 있어 드라마의 효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매장에선 브랜드는 모른 채 “한기주폰 주세요”라는 소비자들이 있다는 것.
덩달아 덕 보는 업체가 이들 휴대폰을 공급받는 KTF다. 이동통신사 중 KTF가 유일하게 제공하는 MSN모바일메신저가 톡톡히 선전됐다. KTF는 극중 박신양이 부른 ‘사랑해도 될까요’를 서둘러 벨소리ㆍ통화연결음으로 올렸다. 드라마 주제가인 조성모의 ‘너의 곁으로’는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에서 1,2위로 급등, 때아닌 전성기를 맞았다.
마에스트로-매출 17% 증가
한기주의 정장을 모두 제공하는 LG패션 마에스트로는 원래 마에스트로의 모델이었던 인연으로 순수하게 의상 협찬만 하고 있다.
프리미엄급인 마에스트로 카델라인의 의상을 30벌 맞춤제작했다. 2명의 패턴사가 달라붙어 3번이나 가봉해가며 맞춤제작한 비용을 제외하고, 평균 상품가가 80만~100만원이므로 약 3,000만원 상당의 의류가 지원된 셈이다.
박신양이 입은 옷은 정작 매장에는 없는데도 마에스트로의 7월 1~22일 매출은 63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7%나 늘었다.
백화점 매장 방문자 수가 드라마 방영 전보다 20%정도 늘었고 인터넷 홈페이지(www.maestro.co.kr) 접속자수가 하루 3,000명으로 평소의 4배나 되는 등 마에스트로에 대한 관심이 제고됐다. 마에스트로측은 제품 카달로그에 대한 요청도 급증해 가을ㆍ겨울 시즌의 카달로그는 봄ㆍ여름 시즌보다 3배나 많은 물량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가장 짭짤한 수혜자
협찬을 하지 않고도 재미를 보는 곳은 인터넷 쇼핑몰이다. 어쩌면 ‘파리의 연인’의 가장 큰수혜자다. G마켓 마케팅팀 김민철 짐장은 “드라마가 방영된 직후인 월요일 매출이 가장 높으며 드라마 관련 상품은 평소보다 매출이 30% 늘었다”고 말한다.
매출이 늘어난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카고팬츠가 주 5만장, 볼레로(미니 카디건)가 주 3만장, 주름이 잡힌 샤링셔츠가 주 4만5,000장 등. 김정은이 입었던 옷을 그대로 본뜬 것으로 드라마 방영 전보다 판매가 2~3배 늘어난 것이다.
판매 품목에 있지도 않았던 돼지저금통과 구형의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갑자기 찾는 이들이 늘어 일주일에 150개, 60개씩 나가고 있다. 이동건의 소품인 꼬마 배낭과 MP3는 매출이 2배쯤 늘었다.
이처럼 제작비 지원이나 협찬을 않고도 인터넷 쇼핑몰이 짭짤한 수혜를 누리는 것은 극중에서 가난하게 사는 김정은의 패션 소품이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젊은 층도 구입만한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쇼핑몰 상인들은 드라마에 처음 선보인 물건이라도 2,3일만에 상품화해 선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주머니를 열고 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PPL의 명암-유행주도 좋지만 자칫 작품성 뒷전
한국 영화 부흥의 시발탄이자, 전도연을 스타 반열에 올려 놓았던 영화 ‘접속’. PC통신을 소재로 한 이 영화 덕택에 유니텔은 엄청난 광고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접속에서 PPL은 단순히 ‘끼워들기’가 아니라 ‘녹아들기’였고, PC통신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PPL이 사회문화적 트렌드와 유행을 반영하고 주도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특히 아시아권의 한류(韓流)열풍 때문에 PPL은 국내 상품의 해외시장 개척을 측면 지원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PPL은 누가 뭐래도 광고이다. 그것도 돈을 받으며 내보낸다. 제 아무리 유행을 선도한다고 하더라도, 그 출발은 제작사가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지급하는 드라마 제작비는 회당 6,500만~8,500만원 정도이다. 그러나 웬만한 스타의 회당 출연료가 1,000만원을 넘는다. 기업의 협찬 없이는 드라마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기업들의 PPL 지출은 편당 적게는 수천 만원, 많게는 10억원 이상에 이른다. 기업이 PPL을 선택하는 것도 적은 비용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PPL은 기업의 매출을 올려 놓아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상업성 때문에 지나친 PPL이 관객이나 시청자들을 짜증나게 한다. 광고주의 입김에 작품이 휘둘리고, 때로는 구성이 뒤집히기도 한다. ‘파리의 연인’도 PPL이 없었다면, 한결 나았을 거라는 견해도 많다.
어쨌든 PPL에는 명과 암이 교차한다. 때문에 단순히 PPL을 규제하는 것보다 제작비를 현실화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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