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문인들끼리 '글 자체'를 화제 삼는 일은 흔치 않다. 반주 두어 잔의 흥으로 윤동주나 육사의 시행들을 읊조리는 일이야 더러 있다. 하지만 산문이, 그것도 10여년 세월 저편의 글이 읊조려지는 예는 극히 예외다.그 글의 주인공은 이제는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우뚝 선 김훈씨이고, 그 책이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이고, '문학기행'이다. 절판 됐던 두 책이 각각 10년, 7년 만에 나온다. 두 책은 그가 한국일보 문학담당 기자시절, 이룬 '글'들 가운데 일부를 빼거나 보태 엮은 것이다. 27일 다시 나온 그의 첫 책 '…책과 세상'은 1980년대의 시와 시인, 세상과 자연에 대한 젊은 저자의 사유가 빛나는 책이다. 책은 독특한 스타일리스트의 문학기사이고, 시에 대한 평론이다. 거르고 거른 소회를 담은 문학에세이이자 격조 있는 기행산문이다.
1·2부에는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과 풍경, 그 곳과 때를 노래한 시들이 있다. 섬진강의 은어무리가 주는 가을 예감과 고은 김필곤 김용택의 시를 말한다. 경주 옛 왕조의 잔흔위에 서서 서정주와 유치환의 시를 전한다. 3부 '시집기행'은 젊은 시인과 시집에 대한 거침없는 단평 묶음. 책은 89년 초간본에서 소설평론 등 일부 산문을 빼고 몇 편의 시평을 추가, '김훈의 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내달 초 다시 선뵐 '문학기행'은 저자와 박래부기자(현재 한국일보 논설위원)가 86년 5월부터 3년간 신문에 연재한 '명작의 무대- 문학기행'을 묶은 것. 두 저자는 박경리의 '토지'부터 시작하는 150여 편의 글에서 문학이 배태된 현장을 안내하고, 시인 소설가들의 시선과 사유의 궤적을 집요하게 훑고 있다. "그 자리에 서 본다. 들판이 훤히 보이고… 바람이 스치자 대숲은 '토지'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듯 신비스러운 소리로 응답한다.('토지')" 김승옥의 '무진기행'편에서는 "음대 출신 여교사가 부르는 그 뽕짝 노래들은,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비천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서로 안심하는 삶의 모습을 깨우쳐주었다"는 소설가의 말도 전하고 있다. "이제는 시를 쓰고 싶다"는 박래부 기자의 단아하고 정치한, 또 다른 글맛도 만끽할 수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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