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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어머니의 매와 삶은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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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어머니의 매와 삶은 달걀

입력
2004.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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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4살 된 딸아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엄마를 목놓아 부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어릴 적 생각이 나기도 한다.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동네 앞 개천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형이 이웃 동네로 구슬치기를 하러 간다고 했다. 형은 '너는 징검다리를 못 건너니 여기에 있어라'하고는 따라가겠다고 졸라대는 나를 두고 다른 형들과 건너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키가 큰 어떤 형은 성큼성큼 가볍게 건넜고 좀 작은 형은 한 칸 뛰고 좀 쉬었다 또 한 칸을 뛰면서 건너갔다. 나는 형들을 놓칠세라 있는 힘을 다해 펄쩍 뛰었다.

그러나 징검다리에 발 한 번 닿지 못하고 그대로 물속으로 첨벙 빠지고 말았는데 귓속을 울리는 꼬르륵 소리와 함께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코로 숨을 쉬었나 보다. 숨이 꽉 막히고 콧등부터 눈과 머리끝까지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물을 잔뜩 먹고 기절했는지 그 뒤로는 기억이 나는 게 없었다.

정신이 들어 눈을 뜨자 눈물인지 눈에 고인 물 때문인지 눈앞이 뿌옇게 보여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방안에 누워 있는 나를 어머니가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깨어나자 어머니는 "이 놈 자식"하고 울먹이면서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빗자루로 엉덩이를 있는 힘을 다해 때리시는 것이었다. 팔이 잡혀 있으니 도망도 못 가고 빗자루를 피하려니 빙글빙글 돌 수밖에 없었다. 놓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와 같이 방안을 돌면서 한참을 맞았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아본 어머니의 매였다. 얼마나 아프고 서러운지 울음을 그치고 나서도 한참동안 숨 쉴 때마다 울음기가 섞여 나왔다. 그토록 예뻐 하던 둘째 아들을 그렇게 때린 것을 보면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셨는지 짐작이 간다.

눈치만 보면서 날이 저물도록 방 한구석에 강아지마냥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를 부르셨다. 쭈뼛쭈뼛 부뚜막으로 내려가 앉자 어머니는 밥솥 뚜껑을 열어 하얀 김을 살살 헤치더니 달걀 하나를 꺼내 찬물에 식혀 주셨다. 낮에 때린 것이 못내 가슴 아프셨는지 말없이 내가 좋아하는 달걀을 쪄주시는 어머니. 다른 형제들 몰래 맛있게 먹었던 그 달걀 맛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장주현·서울 노원구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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