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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지하철에서 남자답게 행동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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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지하철에서 남자답게 행동하는 법

입력
2004.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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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은 파업으로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도 늘고 사람도 많아 고생스러웠다. 이렇게 파업이나 때로 엄청난 지하철 사고도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지하철은 깨끗하고 쾌적해서 나는 버스보다 지하철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서울의 지하철에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게 해주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한국에 온 지 2 년 정도가 지났을 때의 일이다. 어느 정도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그래서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도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잠실로 가는 중이었는데 방배역 쯤에서 한 남자가 내 옆 자리에 앉았다. 자리는 남자가 앉기에는 좀 좁기는 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옆으로 당겨 앉으며 자리를 넓혀 주었다.

그런데 몇 구간을 가지 않아 그 남자는 조금씩 다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앉은 그는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다리를 벌리는 것이 아주 조심스러운 것이어서 외국인인 나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태도로 봐서 평소에는 좀더 자신감 있게 남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했을 것이리라.

삼성역 쯤에 이르자 이제 그는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해서 한껏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자리를 온통 차지했다. 양 옆에는 모두 여자들이니 그렇게 앉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그는 아주 느긋해 보였다. 머리를 창틀에 기대고 눈을 지긋이 감은 모습은 나에게 여자는 당연히 얌전하게 참아야 하는 사회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일어나 그의 두 무릎을 잡고 오므려 민주시민이 앉는 차분한 모습으로 교정해 주었다. 그는 정말 잠에서 깨어난 듯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한껏 인상을 찌푸린다. "아저씨, 괜히 놀라는 척 하지 마세요. 안 자는 거 다 아니까." 객차 안의 사람들이 모두 웃고 그 남자는 얼굴이 좀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외국인만 아니라면 한바탕 큰소리를 칠텐데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는 여자가 감히 어떻게 남자에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얼굴로 다음 역에서 내렸다.

지하철에서 남자답게 행동하는 것에는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다. 굳이 노약자나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존중하는 방식이 있으니까 말이다.

/술탄 훼라 아크프나르 터키인/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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