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국가 정체성 문제를 던진 데 대해 청와대가 정면 대응을 하고 나섰다. 할 일 많은 정치가 추상적인 논란에 열중하면서 민생과 경제가 또 다시 뒷전으로 밀리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 구체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박 대표가 제기한 논란에 부속실장을 통해 내놓은 응답은 초점을 벗어나 있는 듯해 대단히 답답하다.박 대표와 한나라당이 일련의 국정 혼미에 대해 사상투쟁이라는 방식으로 뭉뚱그려 공격하려는 시도는 어색하다. 과장과 정략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를 유신 독재의 반동이라는 틀로 반격하는 청와대의 태도는 더 맞지 않다. 문제의 의미를 일부러 외면하려는, 책임 호도 내지는 희석의 의도가 진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바라기는 정체성 논란의 빌미가 된 최근의 국정 운영의 미숙함이나 실패들에 대해 성찰하고 수긍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박 대표가 문제 삼는 각각의 사례들에 대해 정부가 똑 부러지게 반박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 의문사 진상 조사위가 불러온 몇 가지 문제만 해도 그렇다. 간첩이나 빨치산 출신 인사들을 민주화인사로 규정하거나, 법원이 간첩으로 판정했던 인사가 조사관 활동을 벌였던 일들을 국민 정서와 일반 상식으로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사건이 엉뚱하게도 군과 정권의 갈등으로 번지는 것은 또 어떤가. 이라크에서 인질로 숨진 김선일씨에 대해 정부는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노 대통령은 정체성 논란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논쟁을 논쟁으로만 대하려는 호전적 응답으로는 어려운 나라 형편을 풀 수 없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본질을 꿰뚫어 앞서가는 해결능력에 달려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방법이고, 야당의 공세를 진정으로 무력화시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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