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이 우리당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에서 "대통령과 우리당에 전면전 기세로 싸움을 걸다가 패가망신한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국가 정체성 논란과 서해 북방한계선(NNL) 보고 누락 경위조사의 오락가락함 등을 고리로 한 야당의 전방위 공세를 겨냥한 경고로 보인다. 그러나 정국을 추스려가야 할 집권당 대표의 발언으로는 부적절하기 이를 데 없다.표현의 저급함도 문제지만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 보았자 좋을 게 없다는 식의 근거없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상대를 인정하기보다는 깔아뭉개 버리겠다는 독선이 엿보인다. 신 의장은 "내가 여야 대표회담에 목을 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도 말했다. 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 대표와의 회담을 추진했다. 박 대표가 거부해 회담이 무산되긴 했지만, 이렇게 말할 사안이 아니다. 어느 경우에도 대화의 문을 열어 놓는 여유가 아쉽다.
신 의장은 패가망신의 대표적 사례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16대 국회의 주류세력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려다 4·15 총선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은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탄핵정국의 와중에서 감내해야 했던 국민불안과 국정중단 등을 감안하면 대통령 탄핵소추는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될 불행한 일이었다. 누가 득을 보고 손해를 봤는지는 그 다음의 문제다.
정치권은 친일진상규명 등 과거사 정리문제로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서 말꼬리 잡기식 싸움으로 판이 거칠어져 가고 있다. 상생의 정치 약속은 이미 실종됐고, 상호 비방전이 난무하면서 옛날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말을 조심하면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진흙밭 싸움을 앞장서 말려야 할 지도부가 오히려 이를 선도하는 것 같아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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