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보수와 진보는 잡식성이다. 닥치는 대로 메뉴로 삼아 죽을 둥, 살 둥 상대를 공격한다. 지난 주에도 우리사회는 이런 잡식성 보혁논쟁에 휘말렸다. 이번 소재는 남북 해군 간 교신 보고 누락사건이었다. 이런 문제를 갖고 티격태격하는 여야 정치인들과 보혁 양 진영의 이론가들을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진보쪽은 "북한 경비정이 송신한 것을 빼놓고 보고한 것은 국기를 뒤흔드는 문제"라며 군에 대한 문책을 들고 나섰다. 한 여당 의원은 "지금 준장에서 소장까지는 중령에서 대령을 거칠 때 군부정권에서 지도력을 키워온 사람"이라고 군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여과 없이 내뱉었다.
반대로 보수쪽은 "군이 북한의 도발행위에 적절하게 대응했는데 왜 북한의 거짓말에는 입을 닫고 보고누락만 문제 삼느냐. 먼저 북한에게 따지라"고 핏대를 올렸다. 일부 과격 논객들은 "군을 이렇게 다 죽이면 한국은 망하고 북한이 쳐들어온다"고 안보위기론까지 들먹거렸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군에 대한 문책을 가볍게 하기로 한 이후에는 야당이 거꾸로 군 수뇌부 책임론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운동권에 저 유명한 사회변혁론 논쟁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런저런 입론들이 백가쟁명으로 나오더니 NL(민족해방)파와 PD(민중민주)파로 정리됐다. 좀 단순화해서 필자의 방식대로 분석하자면 우리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NL은 외세로부터의 자주성 제고를, PD는 경제·사회적 민주화를 꼽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논쟁에 직접 참여하거나 논쟁자의 팬이 됐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논쟁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했다. 외세로부터 간섭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 소외된 계층을 잘 살게 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문제 가운데 주요고리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과제는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그런 상호배제적인 관계가 아니다. 흔히 쓰는 말로 두 과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동시에 추구해야 하고, 또 추구할 수도 있다.
이번 남북 해군 간 교신 보고 누락사건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에 대해 북한에 항의하는 것과 군의 보고 누락 책임을 묻는 문제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한쪽을 해도 다른 한쪽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이슈는 국가보안법 등 현재 보혁 간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다른 문제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국가보안법은 폐지, 전면개정, 일부개정, 유지 등 4개의 논점 가운데 하나를 주장하면 다른 것은 함께 주장할 수 없다. 친일규명 역시 관련 입법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입법을 하되 대상을 넓게 잡을 것인가, 아니면 좁게 잡을 것인가 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라크파병도 같은 차원이다.
반면 남북 해군 간 교신 보고 누락사건은 그렇지 않다. 국가보안법처럼 하나를 선택하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군의 정보누락이 있었으니 이를 정확히 처벌하면 되고, 이와 동시에 북한 경비정의 월선이 있었으니 이에 대해 항의하면 된다.
그런데 정부는 군 문책은 한쪽이 반대한다고 그냥 경고하는 수준에서 대충 넘길 모양이고, 대북 항의는 다른 쪽이 반발한다고 깔고 뭉갤 생각인가 보다. 둘 다 할 수 있는데 둘 다 안 하는 것은 최악이다. 이제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은호 사회1부 차장대우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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