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원명 교수의 멘털클리닉/<끝>정신과 藥 중독 걱정 말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원명 교수의 멘털클리닉/<끝>정신과 藥 중독 걱정 말라

입력
2004.07.26 00:00
0 0

정신과 의사를 하다 보면 안타까운 일을 많이 겪게 된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도 인식부족으로 적절히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다.가끔 오는 30대 환자가 내원했다. 5년 전 정신분열병 진단을 받고 여러 병원에서 간헐적으로 치료 받던 환자로 노모가 오기 싫다는 환자를 겨우 달래서 데려왔다. 이 환자는 어머니가 챙겨줘야만 약을 먹고 그렇지 않으면 몰래 약 버리는 일이 잦아 제대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환자를 앉혀놓고 약물치료의 중요성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자 환자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약에 의존해 살기 싫어요! 병이 심각하지도 않은데…. 약 없이도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요!” 많은 환자가 이런 말을 한다. 어떤 환자는 약 없이 신앙으로, 다른 환자는 투철한 의지로 병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약물 치료 없이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정신과에서 쓰는 치료 약물은‘그냥 재워서 흥분을 가라앉히는 약’,‘움직임을 둔하게 하고 바보로 만드는 약’이 절대 아니다. 정신분열병 치료제는 필수적인 뇌 활동 성분인 도파민을 조절해 균형을 잡아준다. 이것은 ‘의존’이 아니라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뇌 활동이 원활해야 의지나 신앙으로 인생의 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또한 모든 정신과 치료 약물에 중독ㆍ의존성이 있다는 속설도 사실이 아니다. 정신분열병과 우울증 치료제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약물은 중독ㆍ의존성이 없다. 다만 항抗)불안제와 수면제 중에 벤조다이아제핀 계통의 약물은 의존성이 생길 수 있지만, 최근 개발된 약은 의존성이 매우 적고, 몸에 독성 효과가 없어 의사처방에 따라 적절히 복용하면 문제가 거의 없다.

나는 컴퓨터게임을 좋아한다는 환자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로 다시 설명해주었다. 컴퓨터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듯이 사람 머리도 하드웨어인 뇌와 소프트웨어인 정신으로 구성돼 있다.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기면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듯이 하드웨어인 뇌에 꼭 필요한 약물 치료를 잘 받아야 의지나 신앙, 정신 등의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할 수 있다고. 환자는 잠시 수긍하는 것 같았으나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이었다.

이 환자는 그의 어머니가 치료 인식이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치료 인식이 없으면 방치하다가 결국 고질이 되기도 하고, 굿한다며 억지로 데리고 갔다가 증세가 악화돼 다시 찾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병에 대한 인식, 의사에 대한 믿음, 그리고 현대의학에 대한 합리적 이해는 정신과뿐만 아니라 다른 질환의 치료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살펴보면 당뇨병, 고혈압, 정신분열병 등의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 중에 객관적인 병 지식을 갖고, 신뢰받는 의사와 지속적으로 상담하며 처방을 받고, 상술에 치우친 민간요법의 허위ㆍ과대광고에 현혹되지 않는‘훌륭한 환자’는 매우 드물다.

병 치료에 훌륭한 의사가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훌륭한 환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라면 훌륭한 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필자가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듯이.

박원명/가톨릭대 성모병원 정신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