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에서 일해 본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정보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뻔한 경우가 많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외교안보팀에서 일했던 필자에게 그런 사례는 1998년 클린턴이 러시아 방문을 불과 3일 앞둔 시점에서 터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사망설이었다.그 보고는 외부에 알려진 옐친의 건강상태와 생활습관, 병력 등에 비추어 봤을 때 신빙성이 있었다. 러시아가 즉각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0일 전 촉발된 러시아의 금융 위기가 정치적 위기를 가속화시켰을 것이고, 크렘린에서는 옐친 사망과 더불어 정치 엘리트 간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결국, 당시 사전 준비차 러시아에 있던 스트로브 탈보트 국무부 차관이 24시간 내에 옐친과 접촉을 시도해 보고 만일 안 되면 클린턴 대통령 방문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옐친은 사망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무실에서 혈기왕성한 모습으로 탈보트 차관을 맞이했고, 클린턴은 이틀 후 러시아 방문길에 올랐다. 러시아 방문이 끝난 뒤 나는 허위보고를 한 중앙정보국(CIA)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난처한 말투로 말했다. "이런 실수는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난 여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 실험을 강행한다는 정보를 놓쳤습니다. 더 이상 그런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이번 실수를 낳은 것 같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이라크 사태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감한 내용의 정보는 결단을 내리는 결정적 지표로 삼기에는 '직감적' 기반이 약하다. 어떤 사태에 대한 정보가 우리가 이미 어떠하다고 믿고 있는 사항이고, 또 우리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방향과 일치한다고 생각될 때, 면밀하게 검토하는 과정은 생략되기 쉽다.
하지만 98년 옐친 사망설과 관련된 해프닝을 지금 이라크 사태와 비교해 볼 때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정책결정자는 중대한 문제에 관해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때 나중에 누군가에게 입증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옐친 사망설이 나돌 때 미국 관리가 직접 옐친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그의 죽음 여부는 당시의 시간적 제약 속에서 '공식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사담 후세인의 관계를 생각하면 똑같은 이치가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후세인은 미국이 갖고 있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에 관한 정보가 틀렸음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어야 했다. 따라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지 못한 후세인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는 논리이다.
부시는 후세인이 이런 입증책임의 법칙을 따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혹은 후세인이 설사 입증을 했어도 전쟁을 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입증해야 할 책임을 이라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형법에서의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중대한 결정은 결코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만 근거해서 내릴 수는 없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도 이런 원리에 기인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미래에도 선택의 상황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상황을 규정짓는 정보의 정확도가 지금보다 나아지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비슷할 결정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스테판 세스타노비치 美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뉴욕타임스=뉴시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