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한 문학시장에서 해외문학 비중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를 두고 누구는 한국 문학의 '상품적 위기'를 농업의 그것에 비유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야 '이랬거나 저랬거나'다. 수입 농산물과 달리 수입 책은 허구헌날 질(質)을 타박하기도, 또 할 수도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번역의 질은 다른 문제. 영미문학 번역시장에서 최근 가장 활발히 활동해 온 정영목(43·사진)씨를 만난 이유다.문학번역이 부업거리로 치부되다 전문직업의 영역으로 편입된 것은 예외적인 일부를 제외하면, 불과 10년 이쪽 저쪽의 일이다.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선 번역가들에게 직업의식이 생겼어요. 그걸 소명의식이라고 해도 좋겠고…. 돈 잘 버는 실용번역 마다하고 문학이 좋아 문학번역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아요(그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겸임교수다)."
내친 김에 물었다. "얼마나 버세요?" "책 내용과 분량에 따라 다르지만 일 년에 기껏해야 대여섯 권이죠. A급 번역가의 번역료가 원고지 장당 4,000원 내외입니다. 항간의 '억대 소득' 소문은 번역료를 인세로 계약해 대박이 난, 그야말로 신화적인 경우죠. 영세한 출판사 사정보면 모릅니까? " 다만 번역료 인세계약이 느는 추세여서, 그는 고소득 번역가들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대 영문과(80학번)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 지인의 부탁으로 번역에 처음 손을 댄 게 1990년. 그 사이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존 그리샴, 조지 오웰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책을 번역했다. 출판사에서 맡기는 대로 번역하던 시절을 보내고, 이젠 작품을 골라 손을 대는 반열에 오른 셈. 그 사이 웃지 못할 실수도 없진 않았다. 한 소설의 제목 가운데 '…의 당나귀'로 나가야 할 'ass'를 '…의 엉덩이'로 번역, 망신을 산 것도 모자라 절친했던 대학 후배 김소진(작고)씨가 소설소재로 끌어다 쓴 적도 있단다. "작가를 가장 투명하게 반영하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쉽고 편하게 읽히도록 글에 당의(糖衣)를 입히는 번역은 피하고 싶어요."
그러나 늘 완성도 높은 책만 번역하는 게 아니다 보니 때로는 어색한 표현도 만나지만, 원작의 말투와 목소리의 톤까지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최근 번역한 '빌 클린턴의 마이 라이프'를 예로 들었다. "클린턴이 직접 쓴 것 같아요. 꽤 잘 쓴 대목도 있고, 유치하고 어설픈 대목도 있어요. 그대로 살렸습니다."
/최윤필기자 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