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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언어 공해'로 병드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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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언어 공해'로 병드는 사회

입력
2004.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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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는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다. 청와대 웹사이트에 '저주', '굿판' 같은 거친 언어가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여성 야당 대표의 합성된 반나체 사진이 버젓이 게시된다. 자기와 다른 주장을 하거나 의견이 다른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인신공격과 협박의 대상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거친 용어와 공격적 논리가 방송과 각종 언론매체에 넘쳐 나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인터넷에서, 공청회에서, 정치권에서 오가는 언어를 보면 지금 한국 사회가 같은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예절과 일체성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든다.관용과 여유는 이미 우리 사회에 가장 희소한 덕목이 되었다. 거칠고 선동적인 언행이 더 개혁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에 품위와 교양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예절과 겸손은 약자의 비굴함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품격이 낮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증상이 도대체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다. 병명은커녕 그 원인이나 대책도 짐작하기가 어렵다.

경제학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가해자가 거기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현상을 공해라고 한다. 하천에 폐수를 방류하면 자기는 이득을 보지만 다수의 국민은 피해를 보게 된다. 주택가 골목에 불법주차를 한 사람은 남들에게 불편을 주지만 본인은 상당한 편익을 얻게 된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면 모욕을 당한 사람은 괴롭지만 본인은 후련하다. 이같이 공해를 유발한 사람은 이득을 보지만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기 때문에 그냥 놓아두면 이런 행위는 과다하게 발생하게 된다.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모든 사람이 불편해지고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된 무례와 무질서, 각종 저질적인 언행도 전형적인 공해현상이다. 욕설과 저주가 넘치는 인터넷, 각종 매체에 넘치는 언어폭력, 인신공격도 모두 공해다. 가끔 무례하거나 무질서한 행위에 대해 자제를 요청하거나 항의를 해 보아도 되돌아오는 것은 더 심한 욕설이거나 언쟁일 뿐이다. 그들과 똑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그런 행위를 보고도 침묵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질서와 방종은 더 확산된다.

소수의 과격한 주장이 마치 여론인 것처럼 확대 재생산되고, 양식 있는 다수는 침묵을 강요당한다. 공해 문제의 근본 원인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제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시장의 실패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것이 언어공해든 폐수방류든 공해를 막을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것을 방임하고 있고 일부 정치인과 언론매체는 오히려 이런 일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공해의 확산을 막고 우리 사회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언론매체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정부와 공영매체가 나서지 않으면 건전한 양식을 가진 국민들이라도 나서서 막아야 한다. 무례한 행동과 질 낮은 언행으로 우리 사회 분위기를 해치고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에게 여론의 질타가 가해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행위는 사회 전체로 더욱 확산될 것이다. 사회 전체가 혼탁해지는 것이 수질오염이나 대기오염보다 더 큰 문제다.

증오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언행, 사회를 분열시키는 논리, 반대 집단에 대한 공개 모욕과 언어폭력, 무질서와 무례한 행동과 같이 사회 분위기를 흐리는 공해 유발 행위에 대한 국민적 거부와 비판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 과정이 건전해지고 착하고 예절 바른 사람들이 품위를 지키면서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착한 사람조차 똑 같이 거칠고 격이 낮은 사람들이 되고 말 것이다. 예절과 품격이 없는 사회가 소득 수준만 높아진다고 선진 사회가 될 수는 없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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