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 오페라 '리골레토'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국내 첫 오페라이자, 세계적인 바리톤 레오 누치가 출연한다 해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공연이다. 레오 누치와 나란히 더블캐스팅된 고성현 또한 '리골레토' 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실력을 갖춘 가수여서 팬들의 기대치도 한껏 높아져 있었다.개막무대의 조수미는 초반에는 긴장한 듯했다. 목소리에 약간의 피로감도 묻어났다. 3막에서는 음정도 떨어졌다. 아름다운 음색과 화려한 기교, 자연스런 연기는 과연 조수미라고 할 만했지만,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던 것같다. 이번공연 1주일 전까지 지방순회 공연을 하면서 무리한 탓에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레오 누치의 노래와 연기는 '우리시대 최고의 리골레토'라는 명성 그대로였다. 사랑하는 딸 질다가 바람둥이 공작에게 농락당하고 목숨까지 잃는 비극 앞에서 꼽추 어릿광대 리골레토가 토해내는 분노와 슬픔, 절절한 부성애를 절제된 표현으로, 그래서 더욱 음영이 짙게 그려냈다.
반면 고성현의 리골레토는 좀 더 직설적이고 강렬한 편이다. 특히 2막에서 납치된 딸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나 딸의 주검 앞에 울부짖는 3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열연은 가슴 뭉클했다. 복수를 다짐하는 리골레토와 그런 아버지를 말리는 질다의 격렬한 이중창 장면에서 고성현과 노르베르슐츠가 만들어낸 드라마 또한 대단히 뜨겁고 실감났다. 객석에서 '브라보'가 터진 건 당연한 반응.
주세페 줄리아노가 연출한 무대는 매우 전통적이었다. 원작에 충실한 고전적 연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연출로 보일 수도 있다. 이번 공연은 이탈리아의 볼로냐 오페라극장이 제작했고 볼로냐 오페라극장 합창단도 무대기술진과 함께 왔다. 그러나 볼로냐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총감독인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는 오지 않았다.
대신 루치아노 아코첼라가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무대막도 볼로냐극장이 쓰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볼로냐오페라단 초청공연'이라는 세종문화회관의 선전은 엄밀히 말해 옳지않다. 오페라극장의 음악 수준을 보증하는 핵심(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이 빠진 상태에서 합창단과 기술진, 의상과 소품이 왔다 해서 초청공연이라고 말하는 건 정직하지 못한 장삿속으로 비칠 수도 있다.
주역 가수들을 소개한 공연 팸플릿의 글이 교열을 전혀 안 본 듯 엉망진창인 것도 거슬린다. '르에르시르 드아모르' 라니, 이게 뭘까.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을 이렇게 표기했다. 이러한 무성의는 서울의 대표적인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공연은 28일까지(오후 7시30분, 월요일은 쉼)
/오미환기자 mhoh@hk.o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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