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7월24일 폴란드 출신의 미국 유대계 소설가 아이작 싱어가 마이애미에서 작고했다. 향년 87세. 문학사는 아이작 싱어를 유대계 미국문학의 중요한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싱어의 작품들이 '영어로 쓴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영문학에 속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작가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였던 이디시어(헤브라이어·게르만어·슬라브어가 버무려진 중세 이래 유대인 언어)로 먼저 쓰여진 뒤 영어로 번역됐기 때문이다. 체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대부분이 일단 체코어로 쓰여진 뒤 프랑스어로 번역돼 동시 출간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번역에 작가가 꼭 참가했던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러시아령 폴란드의 라지민에서 태어난 싱어는 31세 때인 193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는 하시디즘(18세기 초 이래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성과 속의 합일을 내세우며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을 신봉하는 랍비였고, 싱어 역시 바르샤바 유대교 신학교에서 전통적 유대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싱어는 랍비보다는 작가가 되기를 원했고,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고레이의 사탄'(1955), '루블린의 마술사'(1960) '사랑의 미로'(1972)를 포함한 많은 소설들에서 싱어는 성과 속, 유대적 가치와 이단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고 동요하고 찢기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싱어는 197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수상 연설에서 그는 "이디시어는 지난 500년 동안 고난을 받아왔고, 이 고난은 앞으로도 1000년은 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뒷부분의 예언은 들어맞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이디시어 출판이 거의 사라져버린 만큼 이 언어는 앞으로 한두 세기를 더 살아내기 힘들 것이고, 죽은 뒤 고난을 받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