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구조적인 소비부진의 늪에 빠져들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중산층은 주택담보대출 상환부담에 발목이 잡혀 있고, 저소득층은 빚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적자구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설령 이런 빚 부담에서 어느정도 벗어나더라도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고용불안 때문에 지갑을 맘 놓고 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은 23일 '소비부진 장기화 가능성 점검'이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소비부진은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으로,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연구원은 그 근거로 먼저 가계의 부채상환 부담이 단기간 내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꼽았다. 연구원에 따르면 2001년 2·4분기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상환압력은 올해부터 본격화해, 내년에는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주택담보대출의 정점이 2002년 3·4분기이고, 대출의 평균 만기가 2.8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에 상환압력이 피크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돈이 생기면 빚 갚는 것부터 생각해야 하는 처지에서 씀씀이를 늘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소득격차가 벌어지면서, 하위 20% 저소득층은 7년째 빚으로 생활하는 적자구조의 덫에 빠져 있다. 저소득층 가계의 흑자율은 98년부터 올 1·4분기까지 내리 마이너스이다. 가계흑자란 공과금을 내고 남은 가처분소득 중에서 쓰고 남은 돈이다. 이것이 마이너스란 얘기는 번 돈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꾸릴 수 없어, 빚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얘기다.
연구원은 설령 경기가 풀려 웬만큼 빚을 정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고용불안 때문에 쉽사리 소비가 회복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현재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임시·일용직은 전체 근로자의 절반(49.5%)에 달한다.
또 이들의 임금은 상용직의 48.3%에 불과하다. 이 같은 비정규직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적은 임금과 언제 없어질 지 모를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돈 쓰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세금이나 국민연금, 건강보험 부담, 또 교육비와 주거비 등과 같이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지출부담도 나날이 늘고 있다. 연구원이 전체 소득에서 이 같은 고정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한 결과, 90년대 초반 15%대에서 2000년대 초반 20%, 올 1·4분기에는 23.8%까지 상승했다. 연봉 3,000만원 봉급생활자들이 700만원을 세금 내고, 집세 내고, 자녀 사교육비로 쓴다는 얘기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도 쓸 수 있는 여윳돈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송태정 연구위원은 "소비감소세가 1년반 이상 지속됐는데도, 기술적 반등조차 감지되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장기화 국면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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