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짧은 기간이었지만 난 한국일보에서 사회부 기자로 수습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김진명의 장편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정진우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는데, 내가 주인공인 권순범 역을 맡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의 핵 개발 프로젝트를 파헤치는 사회부 기자 역할이었는데, 영화의 내용에 충실한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업으로서의 기자를 체험을 통해 체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외형적으로 기자흉내를 내기에 급급하여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을 테니까.그러나 기자생활을 체험한다는 게 욕심만으로 될 일인가. 정신없이 취재에 바쁜, 그것도 예고도 없이 시시때때로 터지는 사건을 취재해야 하는 사회부 기자의 생활을 체험할 방법은 막막하기만 했다. 고심하던 중에 당시 일간스포츠에서 방송담당을 하던 김경희 기자께 부탁을 드렸더니, 너무나 고맙게도 한국일보 사회부에서 시경 캡을 하고 있던 신윤석 기자(현재 도쿄 특파원)를 소개해 주셨다. 서울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의 취재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내 사정을 얘기 듣더니 흔쾌히 수습기자로 받아 주었다.
짧다면 짧은 일주일의 수습기자 생활동안에 신윤석 기자는 속칭 '잠바부대'라는 사회부 기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에서부터 취재원을 대하는 방법,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 등 사회부 기자로서 익혀야 할 것들을 혹독하게 교육시켜 주었다. 덕분에 나는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의 권순범 역을 무난히 해낼 수 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신윤석 기자는 물론이거니와 당시에 같이 수습을 받았던 다른 기자와도 친분이 계속되고 있어서, 내게 한국일보는 단순한 신문사가 아닌 가족 같은 느낌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려운 여건임에도 내게 수습의 기회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신윤석 기자의 개인적인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일보라는 회사 전체의 정서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한국일보는 일찍이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한국백상예술대상'을 제정하여 많은 문화 예술인들과 단체를 응원하였고, 심지어는 사옥에 소극장을 만들어 연극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현재에도 문화 예술인들과 그들의 작업에 대한 심층적인 기사로 대중들과의 가교 역할을 함으로써 문화 예술인들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렇듯 한국일보의 50주년은 우리의 문화예술을 발전시켜온 역사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은 그 민족과 국가를 지탱하는 정신이고 힘이면서, 또 미래의 설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문화 예술 발전에 힘써온 한국일보의 50년이, 연기가 좋아서 마치 그것이 천직인 양 살고 있는 내게는 각별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데 요즘 10여년 만에 연극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연극계의 현실이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그래도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 속에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연극은 순수예술로서의 가치뿐 만이 아니고,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저변으로서 그것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왔음에도, 사람들의 무관심이라는 단순한 시장논리로 너무나 소외되어 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외된 예술분야와 예술가들에게 관심과 힘이 되어주는 한국일보가 되어, 우리 민족의 정신을 살리고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데 일조해주시길 부탁하면서, 50년 한국일보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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