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니체 담론’이 갈수록 풍성하다. 니체와 관련해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서 출간된 책 가운데 가장 주목할만한 것 중 하나가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고병권 지음ㆍ소명출판 발행)이다. 무엇보다 ‘먼저 니체를 좋아하라’는 저자의 글쓰기 전략이 독자들을 매료시킨다.책의 전반부는 니체와 철학의 관계, 도덕과 윤리 문제, 니체의 해석학과 니체에 대한 해석학, 니체의 근대 정치 비판을 다뤘고, 후반부에서는 권력의지와 영원회귀, 초인 등 익히 알려진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글 솜씨를 맛볼까.
‘눈처럼 쉽게 길들여지는 게 또 있을까? 광학의지 혹은 시각 체제-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는 훈련, 큰 것을 작게 작은 것을 크게 보는 훈련, 두 개의 눈으로 한 가지 진리만 보는 훈련! 그러나 여전히 많은 눈들이 있다. 진리를 묻는 자 스핑크스도 눈을 가졌고, “인간”이라고 답하는 자 오이디푸스도 눈을 가졌다. 따라서 아주 많은 진리들이 있고, 따라서 어떤 진리도 없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고선일 옮김ㆍ새물결 발행)은 좀 여유를 갖고 도전해 볼만한 책이다. 일기, 유언장, 묘비명, 그림, 문학작품 등 역사학자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자료들을 방대하게 인용해가며 생활사를 개척한 아리에스는 이 책에서 중세 초기부터 현대까지 약 1,000년에 걸쳐 죽음의 얼굴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살핀다.
무대가 서양이라는 한계가 있는데다, 첫 대면에서는 인용 자료들이 너무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아리에스의 글쓰기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역사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흥미와 풍성함에 반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거부가 오늘날처럼 공공연하게 표출된 때는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미국 관련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미국 패권의 몰락’(한기옥 정범진 옮김ㆍ창비 발행)만큼 거시적인 안목에서 미국의 미래를 분석한 책도 드물다. ‘세계체제론’으로 잘 알려진 이 정치경제학자는 미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영국의 후계자로 부상하는 그 순간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쇠퇴의 결정적인 계기는 베트남전쟁, 1968년 혁명,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9ㆍ11 테러다. 제3세계와 전세계 민중의 저항, 적의 붕괴를 맞으며 미국은 끊임없이 도전 받았고 정당성을 잃어왔다.
단지 미국만 분석한 것이 아니라 세계화에 대한 평가, 이슬람권 문제, 기존 좌파의 한계와 대안 등 주제가 다양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므로 변혁운동에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말 번역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빌 브라이슨 지음ㆍ이덕환 옮김ㆍ까치 발행) 만큼 탁월한 교양과학서가 나오기는 당분간 힘들 것이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여행 전문기자를 했고, 제법 이름난 여행서를 여러 권 쓴 저자는 이미 정평 있는 유머와 재치를 그대로 살려 이 책을 썼다. 그래서 원자, 상대성 이론, 유전자, 생명의 진화 과정과 메커니즘을 발견해내는 과정이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책은 크게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지구의 생성과 구성, 원자의 발견과 운동, 생명의 탄생과 진화, 유인원과 현생 인류의 등장까지 말 그대로 과학 전반을 다루고 있다. 우주의 생성을 설명하는 첫 장에서는 대폭발(빅뱅) 이론과 팽창 이론이 등장하고, 이어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열역학, 양자론, 상대성이론, 소립자와 초끈 이론이 나온다. 후반부는 생명의 탄생과 인간의 진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과학이 재미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여, 교과서에 그 죄를 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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